오늘 아침 시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다시 부헨벡의 집으로 돌아와 우리와 아침 식사를 하고 싶으시다고. 그런데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구름 낀 티어제 풍경
토요일 오후. 시어머니를 재활 클리닉에 모셔다 드리고 뮌헨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아버지를 방문했다. 아이를 바바라 고모집에 내려주고 남편이 차로 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 아침에는 좋던 날씨가 뮌헨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병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저녁 식사가 막 도착해 있었다. 맥주 한 병과 함께.
독일에서는 환자에게 맥주도 주는구나.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참, 독일에서 맥주는 알코올이 아니라 음료수였지. 시아버지는 맥주 한 병을 다 비우셨다. 그날은 시어머니가 혼자 재활 클리닉으로 가신 날. 맥주 한 병쯤 드신다고 탈이 날 리야없다. 시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침에 카타리나가 전화로 많이 울었다. 아, 그러셨구나. 우리한테는 내색 안 하셨었는데.얇게 썬 검은 빵 한 조각을 드시고 다시 자리에 누우셨다.
그날 나는 2시간을 시아버지 병실에 머물렀다. 시아버지의 삼촌 두 분 중 한 분이 시어머니가 머물고 계신 재활원의 티어제에 작은 별장을 가지고 계셨다고.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두 시간 동안 이 말씀을 열댓 번은 반복하셨다. 그리고 독일의 대문호 토마스 만과 쉴러가 등장했다.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가 배경 음악이되었고 그날 역시 몇 개의 오페라 아리아를 무난하게소화하셨다. 어떻게 한 번도 막힘 없이 부르실 수 있는지 놀라웠다.
시아버지의 병실문(왼쪽) 병실 앞 복도 휴게실(오른쪽)
나는 시아버지께 티어제 풍광과 어머니 룸과 재활 클리닉 사진을 보여드렸다. 다음날이 독일의 <어머니 날>이라고 미리 준비해 간 세 개의 꽃다발과 화분도. 양아버지는 흡족해하셨다. 다행이라고. 아름다운 곳에 가 있는 카타리나를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고.당신에겐 그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셨다.나는 그를 위로했다. 건강해지셔서 카타리나를 방문하자고. 두 분이 댁으로 돌아오시면 함께 티어제로 여행을 가자고.
독일에 오길 잘했다. 작년 1월시아버지의 구순 생신 잔치에 맞춰 독일에 올 때까지만 해도 정정하시던 분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병원에 계시게 될 줄은 몰랐다. 하긴 우리에게 닥치는 일 치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게 있나. 예고란 없다. 오늘 아침 시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다시 부헨벡의 집으로 돌아와 우리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싶으시다고. 병원은 너무 지루하다고. 그런데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시아버지께서 지난주부터 몇 번 말씀하셨다. 댁으로 돌아가면 당신 돌보미 일을 나한테 맡기시겠단다. 지난 토요일 손톱을 잘라 드린 것도 생생하게 기억하셨다. 다시 부헨벡으로 돌아가면 플래카드도 하나 걸어주신다고. 나의 최고의 돌보미,라고. 단 1주일의 병문안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 계기가 시아버지의 병환이라는 것이 아쉽다. 오늘도 들려오는 세레나데는 이렇게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