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과 프레디 머큐리를 생각함
월요일마다 새날의 시작이라고 주문을 건다. 새로운 한 주를 선물 받는 거야.
주말에 날씨가 추워져 아이도 나도 남편도 세 식구가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었다. 목까지 꽁꽁 여미고 다니니 견딜만했다. 월요일이 되자 눈이 내렸고, 다행히 주말에 남편이 거실의 가스 난방 불꽃을 조금 올렸고, 부엌 난방도 가동시켰다. 월요일마다 새날의 시작이라고 주문을 건다. 새로운 한 주를 선물 받는 거야. 금요일까지 열심히 사는 거야. 그리고 주말엔 뒹굴거려야지.
실제로도 그랬다. 토요일 늦게 일어나 빵집에서 갓 사 온 바삭하고 향긋한 빵으로 온 가족이 아침을 먹었다. 저녁에는 셋이 학교 미사를 다녀왔다. 가톨릭 재단인 아이 학교의 175주년 기념일이라고, 학교 부속 성당에서 미사를 올린 후 학교 뒤편 수도원 마당에서 촛불을 들고 행사를 했다. 너무 추워서 중간에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토요일 저녁만큼 편안한 시간이 있을까. 다음 날에 대한 부담감, 예를 들면 내 글쓰기와 아이의 숙제 혹은 남편의 출장도 없는. 저녁은 집에서 간단히 먹고 셋이 나갈 궁리를 하는 시간도 좋았다. 밤은 일찍 찾아오고 셋이 볼 만한 영화를 골라 영화관까지 툭탁거리며 걸어갔다. 왜 버스 타자니까 안 타서 일을 만드나. S반이 또 운행을 안 했다. 이러다 우리 늦겠어. 남편 잘못도 아닌데 안 되는 건 무조건 남편을 탓하는 나쁜 습관 좀 보라.
엄마는 진짜 이상해. 왜 가족끼리 나가는 좋은 시간에 화를 내고 그래. 파파가 뭘 잘못했다고. 아, 효도란 내가 딱 준 만큼 받는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에누리 없는 장사도 없다. 아이가 엄마 손과 파파 손을 꼭 잡게 했다. 말없는 화해를 확인한 후 양손에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화난 얼굴 찡그린 얼굴은 싫다고. 웃는 얼굴 행복한 얼굴 정말 좋다고. 아이란 부모의 스승이란 말이 맞구나!
월요일 새벽에 남편이 출장을 떠났다. 덕분에 일찍 일어나서 아가사 크리스티 책을 읽었다. 이달 말에 뮌헨에서는 그녀의 영화 한 편도 개봉된다. 기대된다. 오전에는 카페에서 쓴 글을 퇴고한 후 브런치에 올리자 그 시간이 한국에서 브런치 읽기가 제일 편하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 그렇담 계속 그 시간에 올려 줄게. 늦은 오후에 느긋하게 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정오에 카페를 나왔다. 추워서 더 머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박차고 나온 건 일상의 리듬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거리 구경을 하며 산책하듯 걸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장도 보았다. 슈퍼에서 손바닥만한 시금치를 발견한 것도 기뻤다. 손만 대면 부서질 듯한 여린 애기 시금치밖에 못 봤는데. 그래도 당연히 한국 시금치만 못했다. 닭날개도 몇 개 사 왔다. 500그램에 2유로라니. 고마운 독일의 서민 물가. 집에 들어서자 부엌 난방 덕분에 집은 또 얼마나 따듯하던지. 아, 좋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 추운 날 돌아올 집이 있다니. 이토록 따듯한 집이.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뭔가. 그래서였을 것이다. 안 하던 짓을 했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맙다고.
오랜만에 친구가 보내준 커피를 내리고 우유를 데워 라테 한 잔도 마셨다. 조카 가족이 왔을 때 매일 아침 마시던 커피였다. 커피를 마시다 문득 생각나 며칠 전 받은 메일에도 답을 보냈다. 또 뭘 했지? 부엌에 쌓인 아이와 내 책 정리까지 할 생각이었는데 그것까지는 못했다. 너무 만족스러워서. 내 등 뒤의 기분 좋게 따끈한 라디에이터. 나는 이런 내 부엌이 좋다. 남편이 뮌헨에서 집을 구할 때 나는 한국에 있었다. 부엌 사진을 보자마자 그래 이 집이야, 결정했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크지 않아서 좋다. 작아서 좋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책을 읽으려고 집에까지 와 놓고.
지난 주 내내 생각나는 프레디 머큐리의 삶. 자꾸만 입가에 맴도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마지막 소절.
Nothing really matters.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Anyway the wind blows..
그 역시 아주 작은 집에 살았더라면 덜 외로웠을까. 사랑했던 메리와 벽난로가 있는 작은 집에서. 그랬더라면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다 괜찮았겠지. 바람이 불어오든 말든. 우린 그의 노래를 들을 일도 없었겠지. 그랬더라면 오늘처럼 추운 날 내가 이렇게 행복하진 못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