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뮌헨에는 눈이 내렸다. 뮌헨의 첫눈! 아직 노란 잎들 다 떨구지 못한 나무들도 많은데. 어쩌랴. 계절이 오가는데 예고가 있나.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적응하는 것만이 나무의 일, 그리고 우리의 일. 브런치에서 뉴욕의 첫눈 소식을 읽은 지 사흘 만이다. 내게는 뉴욕 다음 뮌헨, 뮌헨 다음 서울 순으로 계절이 흐른다. 세상이 점점 빠르게 하나로 돌아간다. 날씨도 세상사도. 저 속도를 멈출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첫눈이라지만 펑펑 내린 건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자 창밖 지붕과 거리에 주차한 차들 지붕 위로 새하얗게 쌓여있었다. 새벽에 출장을 간 남편이 가장 먼저 눈소식을 알려주었다. 아이는 학교 가는 길에 계속 볼멘 소리를 했다. 학교를 마칠 때쯤이면 눈들이 다 녹아버릴 것 같다고. 당연하지. 아침인데도 길에는 눈이 다 녹아 있었으니까. 서둘러 가보니 빅투알리엔 마켓에도 마리엔 광장에도 눈은 지붕 위에만 남아있었다.
서울에서 마지막 해에 본 첫눈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처럼 11월의 어느 날 오후 도서관 카페였다. 뜨거운 차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전면이 통유리였던 창밖으로 눈이 펑펑 내렸다. 좋은 사람 두어 명과 함께였다. 혼자 보는 첫눈만큼 같이 보는 첫눈도 좋았다. 첫눈이 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 뿐인데 아름다운 추억이 하얀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와 소리도 없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았다. 마음의 눈은 언제 꺼내 보아도 녹는 법 없이 은빛으로 빛났다.
주말에 눈을 예감했었다. 눈 내린 어제 최고/최저 기온은 1도/-1도. 지난 토요일은 6도/-1도. 정오엔 심지어 기온이 4도인데도 체감 온도는 0도였다. 해가 나서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걷는데도 추웠던 이유는 바람 때문이었다. 토요일 오전 Five Kontinental Museum에서 아이 반 친구 카타리나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카타리나 엄마가 거기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초대받은 생일 파티라 한글학교를 빠지고 참가했다.
아이를 생일파티에 보내놓고 이자르강을 따라 걸었다. 아직도 곳곳에 단풍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름드리 나무들은 잎들을 거의 떨군 상태였고, 강가의 나뭇가지들은 강물 쪽으로 기이한 포즈로 기울어져 있었다. 무엇이 저 가지들을 한사코 강물 위로 잡아당기는가. 떠나간 잎들이 그리워서? 그런다고 설마 만나질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한두 해 이별하는 것도 아니면서. 누가 보면 꼭 강물로 뛰어드는 줄 알겠다. 그런 가지들을 둥치가 한사코 붙들고 있는 형국이었다.나무만 탓할 일도 아니었다. 내 마음도 틈만 나면 한국으로 기울어지니까. 어딜 자꾸 기웃거리나. 내 삶은 여기에 있는데.
그러다 생각했다. 나뭇가지들이 찾는 건 자기 자신이 아닐까. 강물에 비친 건 그들 자신일 테니까. 푸른 하늘과 햇살의 반짝임 그리고 나뭇잎들과의 작별 인사는 배경일 뿐. 스스로를 비춰보려 저토록 목숨 걸고 강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자신에게서 무엇을 찾으려 하는지는 그들에게 물어보라. 찾다가 찾다가 어느 날 영원히 물 속에 잠긴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물과 불과 흙과 공기 속으로 돌아가지 않는 존재가 어디 있다고.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확인해보니 지붕과 자동차 위의 눈이 가장 오래 남아있었다. 다음 주에 눈소식이 있다니 기다려 볼 참이다. 올 겨울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따놓은 당상 같다. 근래에는 날이 따뜻해져 독일에도 좀처럼 눈 내리는 성탄절 보기가 힘들다 하시던 시어머니 말씀을 들은 게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알프스 자락으로 스키를 즐기러 가는 독일남부 사람들이 눈이 좀 내리면 좋겠다고 걱정까지 했다는데. 올해는 풍성한 눈축제를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