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에 대하여
이네스를 만났다. 서로 얼굴을 붉히고 말도 안 섞은 지 얼마만인가.
이네스를 만났다. 서로 얼굴을 붉히고 말도 안 섞은 지 얼마만인가. 넉 달째였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을 깜빡하고 그녀의 전화를 받고 급히 카페를 박차고 달려 나가던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얼마나 놀랐던지! 독일에 온 지 꼭 반년 만에 일어난 사고였다. 달려가면 1분도 걸리지 않을 학교 앞 카페였지만 이네스는 아이를 데리러 오는 것을 잊었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하지도 용서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무섭고도 서러웠다. 어떤 실수도 인정하지 않는 차가움. 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면서 어찌 그리 냉정한가. 이네스도 나도 둘 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남의 실수를 너그럽게 봐 줄만도 한 나이면서.
이네스는 이네스 대로 나는 나 대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이런 걸 적반하장이라고 한다. 잘못한 건 내가 맞는데.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내가 잘못한 걸 알면서도, 사과를 하는데도 상대가 불 같이 화를 내면 자존심이 팍 상하면서 꼬장꼬장 해지는 거다. 자기는 살면서 실수 안 하나? 어떻게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자로 잰 듯 완벽하나? 하물며 난 외국인인데. 거기서 외국인은 왜 나오나. 처신만 똑바로 했어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그런 자각은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생긴다는 데 함정이 있다.
그 일이 생기고 얼마 후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안도의 시간이었다. 이네스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개학과 함께 픽업 시간이 달라져 얼굴 볼 일이 없을 거라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방학하는 날 마주친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무서웠다. 방학 동안 정신이 돌아온 내가 개학날 아침 용기를 내어 인사를 해도 외면했다. 그녀의 차가운 표정에 내 마음도 얼어붙는 듯했다. 아침에 몇 번 마주칠 때도 못 본 척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아직도 마음이 안 풀렸구나. 하긴 화해는 나의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라야 이루어질 텐데.
가톨릭 재단인 아이의 학교에 미사가 열리던 날이었다. 어떤 날은 아침 일찍, 어떤 날은 주말 오후에 미사를 했다. 그날은 아침 7시 30분까지 등교를 해야 했는데 전날 저녁부터 이네스 생각이 났다. 일찍 등교하는 이네스와 마주칠까 봐 걱정이 앞섰다. 학교에 제일 먼저 가면 안 부딪히겠지. 7시 10분에 학교에 도착하자 교실에는 불도 켜져 있지 않았다. 설마, 이 시간에 이네스를 만나지야 않겠지. 건물 입구를 통과해 계단을 올라갔다. 아이 교실 앞 2층 층계참에 이네스가 딸 알바의 손을 잡고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은 어찌 이리 절묘한가. 그날 아침 나도 이네스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다시 카페 이탈리로 돌아왔다. 아주 작은 카페에 두 주 정도 다닌 후였다. 작은 카페가 주는 아늑함과 자리의 협소함이 주는 불편이 엇비슷했다. 카페 이탈리에서는 창가를 향해 앉아 글을 썼다. 가끔 고개를 들어 창밖의 야외 테이블과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나무 두 그루, 그리고 맑거나 흐린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 한순간이긴 했어도 그것이 이네스라는 걸 알았다. 그녀도 나를 보았을지 모른다. 내가 그 카페에서 글을 쓰는 걸 알고 있으니. 그 후로도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면 모른 척했지만 그렇다고 마음 깊은 곳까지 편했던 건 아니다. 아마 이네스도 그랬을 것이다.
어제는 학교에 지각할 뻔했다. 평소라면 그 시간에 이네스와 마주칠 일은 없었다. 무방비 상태로 학교 앞 신호등을 건너다가 도로 한가운데서 이네스와 부딪혔다. 다른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할로!" 발걸음을 늦추며 좋은 얼굴로 이네스에게 인사를 건네자 놀랍게도 그녀 역시 "구텐 모르겐!" 하며 답했다. 처음 만났던 때처럼 편안한 얼굴로. 아, 고마워라.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었다. 한 발을 내딛을 때 다른 한 발이 앞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그 짧은 시간이 찰라처럼 멈추었다가 느리게 감기는 필름처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영원처럼 느껴졌다. 오래 묵은 숙제는 그렇게 해결되었다. 다음에 만나면 서로 모른 척 고개를 돌리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주말에 '용서'에 대해 생각했었다. 남에게 말하기는 쉬웠다. 용서해. 실수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내 자존심에 기스를 내고 간 사람이라도 화해를 청해 오면 용서하는 게 맞지. 자존심이란 거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세상 쓸데없는 게 자존심 같아. 화해의 제스처인 줄 알면서 받아주지 않을 때 나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날리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스스로. 그러자 떠오른 게 이네스였다. 성탄절 방학이 오기 전에 화해해야지. 거창한 걸 생각한 건 아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말을 건넬 것. 할로, 이네스! 이네스의 반응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도 받아주겠지 믿었다. 그날이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은 몰랐고. 당케, 이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