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된장, 김치, 장조림 그리고 꽃다발
"엄마, 집에 손님이 있으니까 참 좋아!"
"엄마, 집에 손님이 있으니까 참 좋아!"
오촌 언니가 떠나기 전날 아침이었다. 학교에 가며 아이가 말했다. 오후에 아이를 데리고 언니 가족과 빅투알리엔 마켓 옆 도넛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음날이면 손님들이 간다는 것을 알고 아이가 물었다. 왜 담주가 아니고 내일 떠나야 하는가? 이번 주가 방학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언니야들 따라다니며 재밌게 놀았을 텐데.
아이만 좋았던 건 아니다. 나 역시 언니네가 우리 집에 와 주어서 좋았다. 민폐 끼치는 걸 싫어해서 보나 마나 우리 집에 머무는 걸 주저하셨을 형부께도 고마웠다. 열흘은 짧았다. 조카들과 아침 먹고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거나 간혹 장거리 여행을 다녀오기도 해서 언니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많지 않았다. 뮌헨에 살기 시작한 둘째 조카를 보러 온 것이니 최대한 네 식구가 오붓하게 보냈으면 하는 생각도 한몫했다.
마지막 날을 언니네는 조용하게 보냈다. 계획했던 잘츠부르크 여행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아침부터 가방을 쌌고, 한국에서 친구들에게 부탁받은 갖가지 주문들도 하나하나 챙기고, 귀국 후 형부가 인사차 들를 곳을 대비해 와인도 두어 병 더 사고. 그리고 나자 언니네와 뮌헨의 카페에서 느긋하게 차 한 잔도 못 나눈 게 아쉬워서 분위기 좋은 독일 카페에서 늦은 오후의 티타임을 가졌다.
한여름 아름다웠던 정원과 발코니에는 못 앉았지만 오래된 원목이 반들반들한 실내는 따스했다. 테이블 위로 길게 내려온 등이 동그랗게 반짝이는 원을 드리우고 있었다. 위층과 아래층에 자리가 없어 노부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합석을 했다. 백발의 두 분이 어찌나 다정하고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는지 자꾸만 옆자리에 눈길이 갔다. 카페 안의 그림도, 창가의 백장미도, 그들이 빚어내는 아름답고 고요한 풍경과는 비할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언니네가 저녁을 초대했다. 집 근처 슈퍼 옆.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 간판도 없이 저녁 식사만 가능한 이태리 식당이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매일 밤 손님이 가득했다. 피자는 없고 스파게티와 파스타와 소고기 요리 정도만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레드인지 화이트인지만 말하면 요리에 맞춰 병째 들고 온 와인과 다섯 개의 메인 요리를 알뜰하게 나눠 먹고 나자 앞으로 집 앞 피자 레스토랑인 소피아에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언니네가 떠난 다음날 저녁에는 언니가 한국에서 담아온 김치로 김치볶음밥과 언니가 만들어놓고 간 장조림으로 저녁을 먹었다. 남편도 아이도 자꾸만 장조림 리필을 외쳤다. 언니가 남기고 간 게 어디 그것뿐이랴. 언니 엄마표 비법으로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밑반찬들. 내가 꽃을 좋아한다고 작은 조카가 사놓은 가을과꽃 한 다발. 큰 조카가 예쁜 엽서에 깨알 같이 적은 감사의 말과 함께 넣어놓은 마음들..
언니와 나는 전날 새벽까지 부엌에서 얘기를 나눴다. 가족들은 모두 잠이 들고 모처럼 언니와 둘이 실컷 옛 추억을 되새기던 그 밤.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일도 많았다. 같은 마을에 살던 일가친척들 이야기. 언니 형제들과 언니 아버지와의 각종 에피소드를 들으며 둘 다 배꼽을 쥐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찡하게 만든 것은 우리 아버지에 대해 언니가 들었다는 말이었다.
결혼한 지 몇 년도 안 되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다정다감한 분이었는지. 외출할 땐 젊고 아름다웠던 엄마에게 반드시 입맞춤을 하고 집을 나섰다는 이야기. 하물며 그 시절에 말이다. 그래서 엄마와 아버지가 온 동네 아낙들의 부러움과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는 이야기. 본 적은 없어도 언니와 내 속에 흐르고 있을 아버지의 정서를 오래 헤아리던 밤. 내 아버지가 그런 분이었다는 안도감에 나는 또 얼마나 마음이 자줏빛으로 설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