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공휴일에 뭘 했냐고요?

편지 19

by 뮌헨의 마리


독일엔 공휴일도 많지요. 어제는 또 무슨 날이란 말인가요.



그리운 샘.

독일엔 공휴일도 많지요. 어제는 또 무슨 날이란 말인가요. 11.1일은 모든 성인을 기리는 만성절이었고, 어제 11.21일은 속죄의 날이래요. 독일은 전국구 공휴일도 있고 주에 따라 별도의 공유일도 있답니다. 재밌는 건 10.31일이 루터의 종교개혁일인데, 북독일만 공휴일이고 가톨릭이 센 바이에른 지방은 당연히 공휴일이 아니더군요. 월요일 출장을 떠난 클레멘스는 화요일 밤 9시에 돌아와 어제 새벽 3시 반에 또 집을 나갔어요. 새벽 5시 반 베를린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요. 차를 뮌헨에 두고 가야 해서 출장지에서 바로 가지 못한 모양이에요.


어제 아침엔 알리시아랑 브런치로 빵 대신 밥을 먹었답니다. 며칠 전에 제가 연한 독일 시금치를 많이 사놨거든요. 물에 살짝 데쳐서 물기를 꼭 짜고 무쳤더니 먹을 만했어요. 한국 시금치만은 못했지만요. 시금치에 계란 프라이를 넣고 참기름을 듬뿍 뿌린 후 귀한 양념 고추장을 한 숟갈 넣고 비볐더니 어찌나 맛있던지 둘이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독일에서 아침을 빵이 아니라 밥으로 때웠더니 허전해서 결국 점심땐 빵에 치즈와 살라미를 먹었답니다. 커피도 한 잔 내려서요.


그래서 공휴일에 뭘 했냐고요? 아무것도 못했어요. 날씨가 흐리고 추워서 나갈 엄두가 나야지요. 난방을 좀 낮췄더니 으슬으슬해서 자꾸만 알리시아에게 넌 안 춥니? 하고 물었던가 봐요. 애한테는 얇고 가벼운 패딩을 입혀놓은 것도 깜빡하고요. 아, 그렇다고 엄마한테 소리를 막 질러도 되나요? 그니까 엄마도 두꺼운 옷 하나 더 입어! 애 말대로 겉옷 하나를 껴입으니 안 춥더라고요. 라디오를 틀고 커피를 내리고 빨래도 두어 번 돌리는 동안 알리시아는 제 방에서 염색 손수건으로 인형 드레스를 해 입히느라 바빴고요.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어떤 일도 30분을 지속하기가 힘들어요. 계속 부르거든요. 자기가 입힌 인형 드레스가 얼마나 예쁜지 봐달라, 자기 옆에 와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라고 해놓고 자꾸만 귀찮게 해요. 이런 것도 한 때라는 말만 믿고 갈 수밖에요. 그런데 도대체 그때란 언제일까요? 오늘은 며칠 전 사놓은 닭날개 두 통으로 육수를 우려내고 한국에서 건너온 미역과 황태를 넣어 미역국을 끓였어요. 남은 닭날개는 감자, 양파, 마늘, 파를 넣고 닭조림을 해봤고요. 저녁에 고모 바바라가 오거든요. 처음이었는데 알리시아도 맛있게 먹었어요.


지난주 수요일에도 고모가 왔었어요. 알리시아에게 책을 읽어준다고요. 사실은 제가 부탁을 했답니다. 저는 파파가 알리시아에게 세계 명작을 읽어주길 바라는데 고모는 자꾸만 독일에서 핫한 스테디셀러 어린이책을 읽어주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고모가 직접 읽어주면 되겠네! 그랬더니 지난주 수요일부터 책 읽기를 시작한 거예요. 둘이서 1시간 동안이나 낄낄거리면서요. 그 사이 저는 제 독서를 즐겼고요. 이모나 고모가 없으면 알리시아는 어떻게 살까요?


어제는 길일이었나 봐요. 서울의 이모가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이 당도했거든요. 어제 오후에요. 지난 추석 때 되돌아간 선물이에요. 노느라 바쁜 알리시아에게는 비밀로 하고 장롱에다 얼른 미미 선물세트를 숨겼답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 안 들켜야 할 텐데요. 저녁에 온 고모는 처음 먹는 미역국과 시금치나물과 닭날개 찜을 맛있게 먹은 후 화이트 와인 한 잔과 함께 알리시아와 책 읽기에 돌입했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옆에 앉은 알리시아의 태도는 엄청 불량했고요. 이러나저러나 둘의 일이니 저는 다른 방으로 뺑소니를 쳤어요.


샘.

부산에서 지내시는 동안 따듯한 집밥 많이 드시고 올라가세요. 여전히 불면증으로 고생하신다는 얘기 전해 듣고 제 근심도 깊어갑니다. 샘이 보내주신 부산대 산책로 사진을 보며 지난날들이 생각났어요. 샘과 온천천을 자주 걸었죠. 서울 여의도 샛강처럼요. 다 같이 부산에 모여 살던 시절이 참 좋았어요. 강산이 변하듯 삶도 변한다는 걸 그때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음식 솜씨도 부지런히 익혀서 한국 돌아가면 맛있는 거 많이 해드릴게요. 꼭 기다려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11월은 크리스마스 마켓을 준비하는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