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었다. 새싹이 나오려면 멀었다. 독일의 봄은 사월부터. 부활절은 지나야 봄이 올 것이다. 올해 부활절은 조금 빠른 사월초. 중순쯤 되면 기다렸다는 듯 온 천지가 연둣빛 물결을 이루겠지. 뮌헨에 온 지 두 달째. 처음엔 시누이 바바라가 다음엔 새어머니가 나만 보면 '어학'을 걸고넘어졌다. 내 독일어가 어때서! 왜 이렇게 참견들이 심하시나.
새어머니가 시아버지와 결혼할 때가 서른 중반이었다. 나 역시 새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에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 후 마르부르크에 사는 동안 독일어를 배웠다. 아이가 없던 때라 열심히 다녔다. 솔직히 공부가 즐거웠던 건 아니다. 독일에 오기 전에 잠시 영국에서 영어를 배울 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영어와 독일어를 배우는 동안 내가 어학에 큰 재능도 취미도 없구나, 자만심이 줄어드는 효과는 있었다. 독일어에 금방 익숙해지는 러시아나 동유럽 출신의 친구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도 컸다. 뮌헨에 오면서 결심했다. 어학 학교는 그만. 글도 쓰면서 좋아하는 문학으로 제2의 인생 도전을 꿈꾸었다.
"혼자서?"
기가 차신 모양이었다. 나 역시 추가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도 하란 말씀이겠지. 나를 생각해서? 그건 모르겠고. 집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도 좀 나가라고. 사람들도 만나고. 나도 집구석에만 박혀있는 건 아닌데. 매일 카페로 출근도 하고. 만날 사람은 없어도.
시아버지와 재혼 후 중학생이던 남편만 데리고 셋이 뉴욕으로 떠날 때 형과 누나는 독일에서 대학에 들어갔다. 그녀의 까다로움을 다 받아 주는 유일한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남편. 그 이면에는 세상의 중심이던 가정을 깨버린 친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심경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 시민교양대학 폭스 호흐 슐레 VHS에서 소위 '브리티쉬 잉글리쉬'를 수강하시는 새어머니. 그러니 어학 공부에 대해 몇 마디 거들 자격은 갖추신 셈.
"외국어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해야지. 그래서, 대관절, 무슨 책을 읽겠다고?"
꼭 있다, 그런 사람. 그 사람 앞에만 서면 머리 속이 텅 비고 영민한 대처란 아예 불가한. 에라, 모르겠다.
"<마담 보바리> 요."
얼마 전 자선단체 가게에 들렀다가 2유로인가 3유로에 득템한 책이었다. 기부받은 물품 중에서 책만 따로 모아 파는 깔끔한 중고 서점에서. 수수한 빨간색 양장. 제목을 따라 햇살처럼 가는 금빛 테두리. 누런 책장. 빛바랜 인쇄. 한 눈에도 고전이구나 싶던. 손에 든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던 나의 마담 보바리. 이런 책을 내가? 읽기도 전에 감동부터 받던 책.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어휘를 실생활에 몇 개나 써먹을지 알기나 하니?"
저 눈빛. 사람을 죄다 아래로 깔고 시작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당연히 모르지. 아직 몇 페이지도 못 넘겼는데. 새어머니 말씀대로 어렵기는 했다. 공기의 밀도가 높아져 남몰래 심호흡 한 번. 최후의 일격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말 그대로 하이라이트.
"요즘 사람들은 좀 만나니?"
의외로 시작은 부드러웠다. 이러시면 곤란한데. 영문을 몰라 더 긴장하게 되잖나.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지.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
"알리시아 데리러 가면 만나는 같은 반 엄마가 있어요."
그 학부모란 다름 아닌 알바 엄마 이네스였다. 단 한 명이란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취사 선택도 거짓말에 속하나? 그때만 해도 뮌헨 문학모임은 꾸려지기 전이었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나눌 사람이 없던 것도 사실이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혀를 찰 일이기는 했다.
"아, 그러면 벌써 같이 차도 한 잔 마셨겠구나?"
이러실 줄 알았다! 정확하게 뭔지는 몰라도. '아니'라고 말하며 순순히 백기를 들었다. 승부의 순간은 빠르다. 늘 그렇듯이. 한 번이라도 내가 예상 질문을 맞춘 적이 있어야지.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 매번 당하면서도 새어머니의 이 기막힌 순발력에 진심으로 감탄하게 된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인 처지도 깜빡하고. 이런 건 따로 배우나? 아님 타고 나나? 하다 보면 저절로 느나? 그런데 저렇게 멋진 감각을 왜 낭비하시나. 허접하게 약한 자나 공구시며.
시아버지와 결혼할 때 새어머니는 초혼이었다. 새어머니는 내 친정 엄마와 비슷한 연배. 당시로는 꽤 늦은 결혼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시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으셨던 모양. 두 번이나 아이를 지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다.
두고두고 원망을 감수해야 했던 시아버지는 2년 전에 치매로 돌아가셨다. 새어머니의 부모님은 예전에 돌아가시고 그녀에겐 형제자매도 사촌도 하나 없었다. 외로움이 자꾸 사람을 비뚤어지게 만드는 지도. 물론 20년 전부터 쭉 외로우셨다는 가정 하에.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마담 보바리를 책장 구석에 처박았으니 내가 진 건 자명했다. 그렇다고 새어머니의 완승으로 보기도 어렵다. 보바리 부인 이후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몇 명의 주인공들과 번갈아 밀당을 계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뜻이 명확하게 통하지 않아 페이지를 펼쳤다 덮었다를 반복하면서. 어학이 싫어서는 아니었다. 반항은 더더욱 아니고. 나는 글쓰기를 원했을 뿐. 글을 쓴다고 하면 또 무슨 빈정을 들을지 그것을 견디거나 버틸 자신이 없었다. 양아버지 한 명으로 충분했다. 가을에 아이가 방과 후를 신청하면 어학에 짬을 낼 수 있을 지도. 어설픈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는 아니고. 배워서 남 주나, 그런 생각으로.
p.s. 살면서 새어머니만큼 어려운 캐릭터를 만난 적이 없다. 그분 앞에서 한 번도 불안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좌불안석.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묘하게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이 비수처럼 날아올 지 몰랐으니까. 작년까지는 그랬다.
올해 2019년은 내게 기록할 만한 해가 될 것 같다. 어머니와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올해 들어 어머니가 깜빡하시는 횟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깜짝 놀랐다. 충격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갑자기 좋은 며느리가 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머니 곁에 있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어머니와 함께 할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지금까지 잘했다면 이런 걱정도 필요 없을 텐데.
2019년 크리스마스. 새어머니는 내게 친정 어머니의 유품인 진주 목걸이를 선물로 주셨다. 어머니의 깜빡하시는 증상이 꾸준히 늘고 있는 2020년. 우리는 하루 걸러 전화로 안부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2020년 3월. 독일에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렸다. 곧 매일 안부 전화를 드릴 생각이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홀로 격리되어 계신 어머니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 어머니와 나는 해마다 사이좋은 관계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