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를 사랑한 사람

나의 시아버지

by 뮌헨의 마리

"셰익스피어 좋아하면 다 가져가거라."



재작년 여름 서울에 살고 있을 때였다. 시아버지와 사시던 독일의 새어머니를 방문하자 한 달 전 돌아가신 시아버지 방이 손님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남편과 아이와 그 방에서 묵었다. 침대 머리맡의 보조 테이블도, 그 위의 독서등도, 보조 테이블 옆으로 시아버지 하네스의 손때가 묻은 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도 그대로였다. 저녁마다 아이의 취침을 핑계로 일찍 손님방으로 철수하면 자주 시아버지 생각이 났다. 침실 책장에는 못 보던 노란 문고본이 많았다. 하네스가 셰익스피어를 좋아하셨구나! 처음 알았다. 왜 시아버지를 생각하면 토마스 만만 떠오르지. 다음날 어떻게 아셨는지 새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셰익스피어 좋아하면 다 가져가거라."


시아버지는 말이 없는 분이었다. 권위적이거나 무서운 성격은 아니었다. 체구는 아담하고 얼굴은 동글동글해서 귀여운 할아버지 모습이셨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눈썹 한가운데 V자를 축으로 양쪽 눈썹이 딱 붙은 걸 보고 남편과 같이 웃던 기억이 난다. 영락없이 삼대가 내림이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은 그럴 때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시아버지는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삼 남매 중 누구도 그 푸른 눈을 물려받은 이가 없었다. 우리 아이 역시 눈과 머리카락은 모계 쪽. 한국에서는 지하철만 타면 사람들이 대놓고 나에게 누구세요?라고었다. 여기 와서는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이와 나는 그들 눈에 동양의 검은 머리에 검은 눈. 누가 봐도 엄마와 딸이었다.


시아버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장면. 해마다 2월이면 시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스위스의 상트 모리츠 클럽 메드로 스키 여행을 떠났다. 수십 년 동안 이어오는 연중행사였다. 그럴 때는 세 자녀도 초대를 받았다. 우리는 여름과 겨울 두 차례 독 방문 중 한 번은 그때로 맞춰두고 있었다. 어느 해였다.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의 둥근 테이블에 앉았다. 레드 와인을 즐기시던 시아버지가 새어머니의 제재가 풀린 틈을제법 드신 것 같았다. 그렇게 유쾌하고 말씀이 많은 시아버지를 결혼 후 처음 보았다. 나 역시 레드 와인을 좋아했다. 결혼 전 남편과 와인을 마시다가 구름 위를 걸어본 전력도 있고,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는 외국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다 룸메였던 훌리아에게 업혀오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 그날 밤 옆 테이블의 모르는 사람들과 서슴없이 대화를 나누시며 웃음소리 끊이지 않던 하네스. 오래 기억하고 싶은 시아버지의 모습.


그보다 더 원형의 장면도 있다. 뉴욕에서 돌아와 새어머니가 직접 설계했다는 하얀 집은 대리석 바닥을 깐 정원이 있는 2층 집. 지하에는 시아버지의 서재와 새어머니의 사진 작업이 있었다. 1층 거실의 흰 소파. 벽면을 가득 채운 책과 CD들. 소파와 다이닝 테이블 사이엔 시아버지의 하얀 그랜드 피아노. 그리고 이어지는 모던한 시어머니의 키친. 2층엔 발코니가 딸린 부모님 침실과 소라형 가파란 계단을 따라 옥탑방으로 연결되는 게스트룸에 남편과 내가 묵었다. 당시만 해도 새어머니 기세가 등등하여 나는 찍소리도 못했다. 시아버지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어머니 앞에서는 둘 다 말수가 적었다. 어느 날 새어머니가 외출을 했다. 둘이 코드가 맞으려나, 시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바라본 후 한숨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닫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댁에서 머문 날들 중 가장 평화로운 하루였다. 남편도 나갔는지 그날 내 기억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시아버지와 나는 거실 소파 양쪽에 앉아 말없이 독서에 몰입했다. 토마스 만을 한 손에 들고 내가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하신 듯 티 안 나게 간간이 내 쪽을 바라보기도 하던 시아버지. 그럴 때 하네스의 얼굴에 보일락 말락 번지던 미소를 나는 좋아했다. 책과 음악을 사랑하던 사람. 클래식 음악의 볼륨을 적당히 올리시며 커피 마실래, 물어 주시던. 나는 햇살이 들어오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그리운 모국어로 쓰여진 소설책을 읽었다. 따끈한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평소엔 입에도 안 대던 독일식 블랙커피를. 시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블랙커피가 그날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시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그날도 미묘한 말로 내 속을 긁던 새어머니에게 화가 나서 내 손을 잡으려는 남편의 손을 뿌리친 적이 있다. 넷이 점심을 먹고 공원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뒤따라오시던 시아버지가 그것을 보신 것을 나중에 알고 더 속이 상했다. 점심을 먹다 말고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이 더 야속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남편의 사촌 다니엘라의 이혼 소식이 들렸다. 시아버지 남동생의 장녀. 성격이 밝고 사교성이 좋아 온 집안사람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다니엘라. 그들 잉꼬부부의 애정은 지치지도 않고 화제에 오르내렸다. 시아버지의 충격은 크신 듯했다. 무심을 가장한 채 조심스럽게 물으신 것도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너희 부부는 괜찮지?"


"그럼요, 하네스. 염려 마세요."


평소 두 마디를 넘기지 못하던 내가 시아버지를 바라보며 길게 답했다.


하네스는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 뼛속까지 시어머니 카타리나를 사랑했던 시아버지는 재혼 후에도 종종 새어머니의 이름을 '카타리나'와 혼동해서 부르고, 자다가도 그녀의 이름을 불러 일찌감치 새어머니 힐더가드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따지고 보면 그로서는 억울한 일. 그에겐 사랑한 죄 밖에 없다. 언젠가 카타리나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일곱 살이 많던 청년 하네스가 스무 살 처녀 카타리나를 처음 만났을 때 첫 질문은 세 가지였단다. 가톨릭인가? 이름은?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더 묻고 첫 키스를 하셨다나. 하네스와 이혼 후 다시는 성탄절 예배 때 영성체를 못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며 눈가가 촉촉해지던 시어머니 카타리나.


시아버지 하네스의 마지막 몇 년은 치매셨는데, 젊잖은 성품은 치매라 해서 변하지 않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사랑한다, 좋아한다 그런 말을 입 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표현하지도 못한 말을 이심전심으로 알아주셨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내 마음속에 하네스는 그 이름처럼 다정하고 온화한 분으로 오래, 오래, 아주 오래 남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보봐리 부인>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