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용꿈을 꾸었다

용일까 드라헤 Drache일까

by 뮌헨의 마리


"엄마, 내 꿈 말이야. 자꾸 생각해 보니까 용이 아니고 살짝 드라헤 Drache 같았어. 등에도 머리에도 뿔이 나 있고. 그리고 날개도 있었어." 그게 용이야! 그러니까 그건 진짜 용꿈이 맞아!



"엄마, 내 꿈 말이야. 자꾸 생각해 보니까 용이 아니고 살짝 드라헤 Drache 같았어. 등에도 머리에도 뿔이 나 있고. 그리고 날개도 있었어."


등굣길에 아이가 말했다. 이틀 전 아침에도 학교 앞에서 들은 말이었다. 아이가 용꿈을 꾸었구나! 그 생각만 하고 정작 꿈 얘기는 자세히 들을 새도 없이 아이가 급히 학교 안으로 뛰어가는 바람에 나도 깜빡 잊고 있었다. 어제 아이는 학교를 하루 쉬었다. 용꿈 얘기를 하던 날 밤에 온몸에 열이 펄펄 났던 탓이다. 마치 용의 입에서 나온 불길에 휩싸이기라도 하듯.


열은 밤새 계속되었다. 아이의 이마와 양볼과 목덜미, 그리고 양손과 양발과 배와 등까지. 다행히 콧물이나 기침은 없었다. 아이가 자다가 자꾸 고,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화장실도 두어 번 가는 바람에 나 역시 깊이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도 열이 났으나 아이는 학교에 가야 한다고 우겼다. 방학을 이틀 남겨놓은 터라 빠지면 너무너무 아쉬운 게 많다나. 그러나 새벽에 출근하며 아이의 뺨에 입을 맞추던 파파가 깜짝 놀라 묻지도 않고 담임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버린 후였다.


남편이 출근 준비를 하던 새벽 4시 반에는 비가 내렸으나 그날은 종일 햇볕이 고왔다. 거실 가스 오븐의 불꽃을 높이고, 전기 매트를 켜고, 아이와 누워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나니아의 마지막 챕터는 방학과 함께 끝날 것 같았고, 파파가 읽어주는 로빈슨 크루소도 진도가 비슷해 보였다. 다행히 파파도 아이도 로빈슨 크루소를 흥미진진하게 읽는 중이었다. 그다음 책은 무엇으로 할까. 톰 소여의 모험? 톰 아저씨의 오두막? 아니면 80일간의 세계일주? 엄마의 즐거운 고민은 계속된다.



어제 오후에는 조카가 놀러 와서 아이와 놀아주었다. 저녁에 알바도 가야 하는데. 아이는 언니와 놀면서 열이 내렸다. 투이 집에서 김치를 담아주고 남은 양념으로 배추 두어 포기를 담아 조카와 생김치로 밥을 먹고, 아이가 조카와 보드 게임을 하며 노는 사이 아이방을 정리했다. 방이 너무 커도 문제다. 아늑한 맛이 없다. 아이방이 그랬다. 일찍 귀가한 남편에게 부탁해서 침대를 창가로 옮기고 그 자리에 ㄷ자로 책장을 놓고 한가운데에 뽀로로 매트를 두 겹으로 깔았더니 훌륭한 책 코너가 만들어졌다. 지금까지의 배치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친김에 아이의 물건과 내 책이 겹으로 쌓인 부엌도 정리했다. 이토록 정신없는 부엌으로 새해를 맞이해서 될 일인가. 파파와 아이는 매번 말로만 반복되는 내 각오를 반신반의하면서 새로 생긴 책 코너에 비스듬히 드러누워 사이좋게 독일 어린이 고전 명화를 감상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시작한 부엌 정리는 완전하게 끝을 맺지는 못했지만 내게는 큰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진리였다.


다시 아이의 용꿈.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아기용과 엄마용이 있었는데, 어린 소녀가 아기용과 놀고 있었다. 잠자던 엄마용이 깨어나서 소녀를 보고 깜짝 놀라 입에서 불을 내뿜으려는 순간 아기용이 들고 있던 막대기로 소녀를 건드려 돌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아이의 코멘트는 아마도 아기용이 소녀를 구해주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단다. 돌은 불에 타지 않으니까. 그럼 그동안 우리 아이는 어디 있었을까? 자기는 공중에서 그 모든 일을 바라보고 있었다나.


그러니까 그게 용이 아니라고? 내 말에 아이는 모르겠단다. 드라헤보다는 조금 무서워 보였단다. 아이에게 한국용은 무서운 이미지? 내가 보니 외국용들이 상시 불을 내뿜더만. <마녀 위니와 아기용>처럼. 나는 아이에게 용꿈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생략했다. 용이 나오는 꿈은 좋은 거야. 그 정도면 충분. 마음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아니 그러니까 싱글도 아니고 더블로 용꿈을 꿨다는 거잖아. 그것도 엄마용이랑 세트로! 한참 신나 있는데 아이가 분위기 깨는 소리를 한다. 그게 엄마용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단다. 무슨 소리! 그럼 그게 파파용이겠냐! 내가 소리를 질렀다. 물론 마음 속으로만.


"그게 바로 용이야! 그러니까 그건 진짜 용꿈이 맞아!"


(가운데:이자르강변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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