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아이가 떼를 쓸 때

아침 등굣길 버스 안에서

by 뮌헨의 마리


아기가 버스 바닥을 뒹굴었다. 위아래가 달린 스키복이라 다행이었다. 요지는 왜 앞의 버스를 타지 않고 뒤의 버스를 타느냐는 것.



오늘 아침이었다. 주말에 쌓인 눈은 어제 해가 나와서 많이 녹은 줄 알았는데 길은 아직 미끄러운 곳이 많았다. 아이가 다니는 독일 초등학교 등교 시간은 아침 8시 5분. 8시에 준비종이 울리고, 8시 5분에 시작종이 울린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10분. 오전 9시까지 버스는 10분에 1대씩 온다. 등교 때의 차량 운행 시각은 매시 5/15/25/35/45/55분인데 단 한 번의 예외가 있다. 출근과 등교로 혼잡한 7시 30분대에만 7시 30분과 7시 38분 두 차례 운행한다. 회사도 학교도 아침 8시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는 버스는 52번. 아침을 든든히 먹고 집을 나서는 시간은 7시 30분인데 7시 38분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목표 시간이 그렇다는 말일뿐 매번 아이나 나 둘 중 하나가 꾸물거리는 통에 몇 분 지체되기 일쑤다. 그럼에도 이 버스를 탈 수 있는 비결은 버스 역시 몇 분씩 지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인가. 오늘은 7시 34분에 집을 나섰는데 우리가 버스 정류장 앞 신호등에 도착하기도 전에 버스가 온 게 아닌가. 7시 37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래서는 안 되었다.


이런 경우 방법은 두 가지. 지체 없이 계단을 내려가서 지하철 우반(U-Bahn)을 타거나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다. 우반은 4개(U1/U2/U7/U8) 노선이나 운행되므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한 코스만 가면 되니 시간이 단축된다. 그러나 우반역에서 학교까지 7~8분 정도 걸어야 해서 학교 앞에서 내리는 버스와 비교하면 전체 소요 시간이 비슷하다. 다만 다음 버스를 기다릴 경우 7시 45분 버스라 지각할 위험이 크다는 것.


그러면 그렇지! 내 생각이 맞았다. 정각에 와도 이상할 버스가 일찍 올 리가 있나. 신호등 앞에서 바라보니 우리가 탈 버스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이럴 때는 경험치를 믿는 게 낫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면 늦다. 1차선이라고 함부로 건너는 것도 위험하고. 아이와 함께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수칙 1호다. 재빨리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서 반대편 버스 정류장 쪽 출구의 에스칼레이터에 오르는 게 빠르다. 독일의 버스는 2량이라 코너를 도는 것도 느리고 정차 시간도 제법 걸리기 때문이다.




버스에 오른 후 아이와 마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정류소에서 유치원에 가는 아기가 버스에 올랐다. 아기 엄마가 버둥대며 울부짖는 아기를 억지로 태운 모양이었다. 버스를 타자마자 엄마는 가운데의 비어 있는 공간에 아기를 내려놓았다. 유모차와 휠체어를 위한 곳이다. 아기가 버스 바닥을 뒹굴었다. 위아래가 달린 스키복이라 다행이었다. 요지는 왜 앞의 버스를 타지 않고 두 번째 버스를 타느냐는 것. 오호, 승부 근성이 장난 아니다. 죽어도 2등은 싫다고?! 젊은 독일 엄마의 반응을 보자.


"아가야, 미안해. 하지만 엄마 말을 들어 봐.. 저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 차서 우리가 탈 곳이 없었어. 너도 봤지? 그래서 못 탄 거야. 일어나서 엄마랑 같이 볼까. 저 버스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자, 저길 봐.. 우리는 같이 달리고 있는 거야. 어때, 보이지? 엄마 말이 맞지?.."


아기의 울음은 잦아들었고, 엄마의 말을 새겨듣는 눈치더니 어느 새 엄마에게 안겨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버스 통로에 서서 한 팔로는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잡은 채 몸을 버스 진행 방향으로 돌리고 아기와 함께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때 아기는 엄마의 권유대로 출입문이 열리는 버스 벨을 눌렀다. 나는 그들 바로 뒤쪽에 앉아있었다. 우리 아이도 저 나이 때 떼를 많이 썼다. 초보 엄마였던 나는 그런 아이 앞에서 얼마나 쩔쩔맸던지 친구들에게 그러다 애 망칠 거라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요즘은? 글쎄.. 주로 엄마의 큰소리를 잔소리쯤으로 치부하고 콧방귀를 뀌기 일쑤다. 어쩌다 엄마를 무서워할 때가 있는데 주로 내 목소리가 하향할 때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아직은 내가 살짝 우세한데 수년 안에 찾아올 사춘기가 변수겠다. 그때가 되면 상황은 금세 역전되겠지. 아, 그러고 보니 목소리를 깔고 내가 자주 써먹는 단어는 '갱년기'다. 아이에게 이 말은 듣도 보도 못한 갱단의 갱스터쯤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손을 잡고 버스를 내리자 날씨는 맑고 하늘은 푸르렀다. 오늘 아침처럼 늦게서야 깨닫는 일도 있다. 아이의 떼도 한 때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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