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J언니가 시인의 에세이 책 두 권을 보냈다. 마음에 등불이 켜지는 기분. 그 등불을 들고 차가운 거리로 나섰다. 시인이 남기고 간 말이 뒤를 따랐다.
"만날 사람이 없다.// 누군가를 만나서/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싶은데/그럴 사람이 없다."
그 마음 나도 안다. 만날 사람이 없기는 매한가지. 그래도 괜찮다. 외국 생활이란 게 그렇지. 그럭저럭 견뎌보기로 한다. 다른 방법도 없어서. 한국 미용실과 한국 슈퍼 빼고, 아는 사람 하나 없이 2년을 견딘 적도 있는데. 나는 괜찮을 것이다. 반드시 괜찮아야 한다.
"이곳에서 사는 게 다 꿈이었고, 그곳으로 가는 것도 다 꿈이었다. 붙잡힌 영혼이여, 몸이 무거운가, 왜 이곳에서 그곳으로 선뜻 움직이지 못하는가."
여기 살아도 거기 살아도 꿈인 건 마찬가지. 그럼에도 꿈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꿈에서는 이곳에서 그곳으로 가는 데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텐데. 몸도 영혼도 무겁지 않을 테고.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
나는 무엇에 욕심을 내는가. 이곳에서 친구라도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한 편의 글을 써내고야 말겠다는? 그 글을 읽으며 잠시라도 나를 기억해 달라는?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것이 소용이 없다면 도대체 뭐가 소용이 있겠는가. 어디라도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어디를 가려고 길을 나섰던가. 어디 그 사무친 것이 있다고 믿었기에 길을 나서서는 오래 집으로 가지 않는가.(...) 나의 여행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여행인가."
맞다! 나의 여행도 그렇다. 그런데 도대체 그 집은 어디지.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시인의 말을빌리자면 '고마웠다, 그 생애의 시간들'.
"마르부르크에서 지내던 시절, 그곳에는 강이 있어서 자주 강 바라기를 하러 나갔단다. '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강 언저리에서 강 바라기를 하고 있으면 마치 진주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가뿐해지곤 했지,"
나도 거기 살았다는 걸 시인은 모르실 것이다. 시인이 없는 그곳에 나 역시 지금은 살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는 것도. 그게 다 시인 탓이라는 것도. 그 작은 시냇물 같은 강물을 나도 얼마나 좋아했는지.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마르부르크 성을 올려다보며 강변을 따라 얼마나 걸었는지. 언제 들어도 예뻤던그 이름 디 란 Die Lahn.
"동백꽃을 보면서 서해의 섬들을 떠올린다. 찬 겨울이 채 지나가기 전에 꽃은 붉게도 피었다.(...) 동백은 지는 꽃이 아니다. 동백은 저를 제 그늘로 던지는 꽃이다. 마치 그 섬에서 늙어가던 당숙모처럼 그렇게 제 그늘로 저를 던지는 것이다."
동백을 못 본 지 오래다. 겨울엔 동백을 봐야 하는데. 그 차가운 붉은빛. 한국의 겨울은 동백 빛이다. 그 빛 속으로 걸어가고 싶다. 내가 나임을 잊게 하는 빛. 내가 너였음을 알게 하는 빛, 그 동백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