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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an 11. 2019

위험한 예고편

중년의 갱년기


예고도 없고 전조도 없고 매뉴얼도 없다. 언제, 어느 순간에, 뭣 때문에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갱년기!



이제야 알겠다. 작년 초여름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 좀 늦었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전화로 고함을 치는 걸로 성이 안 차서 대로에서 이성을 잃고 소리 지르던 이네스의 증상을. 평소 그렇게 이성적인 독일 사람이. 그녀의 전화를 받고 학교 관계자인 줄 알고 나는 또 얼마나 혼비백산했던가. 이네스도 그것이 갱년기란 건 몰랐겠지. 본인도 얼마나 당황스럽고 민망했을까. 그땐 저 여자가 미쳤나 싶었으니까. 그녀와 나는 동갑. 둘 다 만으로 오십이 되었다.


그제 오후 4시. 아이를 픽업하러 갔는데 10분이 지나도 율리아나 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았다. 신경이 쓰여서 조용히 전화를 드려 이렇게 여쭈었다. 제가 율리아나를 픽업할까요? 그랬더니 태연하게 지금 오고 계시단 대답이 돌아왔다. 위험한 나이를 무사히 건너온 여인의 저 위엄을 보라! 율리아나 할머니는 올해 만으로 68세시다. 독일에서 그 나이면 젊은 축에 속한다. 지금 같은 겨울아니라 매일 자전거에 율리아나와 남동생까지 태워 하하실 정도니까.


독일어로는 갱년기를 어떻 쓸까. 위험한 나이 Das gefährliche Alt. 갱년기라는 단어를 저렇게 풀어서도 '표현'하는구나. 이 단어를 처음 발견한 날 깜짝 놀랐다. 어쩜 이리 직설적인가. 너무하지 않나? 처음에는 웃음이 나중에는 울고 싶다가 마지막엔 서러웠다. 이런 것도 전형적인 갱년기 증상이다. 연말에 뮌헨에 오셨던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던져놓고 셨다. 나보다 세 살 정도 위인 여자분인데 갱년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툭하면 펑펑 운다고. 울기만 하면 다행이게. 다른 사람을 붙잡고 괴롭히거나 진상짓만 하 않아도 감사할 판이다. 맥락에는 안 맞지만 갑자기 드는 생각. B사감과 러브레터의 그 사감은 단언컨대 갱년기였을 것이다에 전부를 건다!



돌아보면 작년 가을에 한 번, 연말에 한 번, 도무지 감정 조절이 안 되어서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내가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로. 그런 순간이 이틀 정도 지속되었는데 그때는 몰랐고 나중에서야 갱년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더 이상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시기의 도래라니. 그 충격이라니. 한 번에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던 순발력과 기민한 사고는 다 어디로? 만일 내게도 그런 덕목이 있었다고 한다면. 한국의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머리로 이해했다고 문제가 다 해결될 리는 없다. 갱년기가 그리 간단한 문제인가. 예고도 없고 전조도 없고 매뉴얼도 없다. 언제, 어느 순간에, 뭣 때문에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갱년기! 사춘기처럼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애환 중의 하나다. 누군가는 이 시기를 '영혼이 파괴되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그 정도면 으스스한 기분마저 든다. 운이 없으면 50대 내내 겪기도 한다고.


해결책은? 없다! 오십 중반을 넘긴 J언니의 지혜로운 충고에 의하면, 또 오나 보다 하고 재빨리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단다. 정말 그랬다. 며칠 전 저녁을 먹다가 남편이 음식을 대충 먹고 포크를 내려놓는 걸 보고는 대번에 감정이 바닥을 쳤다. 본인은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했지만 맛이 있었다면 그럴 리가 있겠나. 눈치 빠른 남편이 뒤늦게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던졌으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만 이런 게 갱년기 전조로구나, 싶어 꼼짝 않고 앉아서 그 감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30분쯤 후 기분이 나아졌다. 큰 파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주위의 충고를 종합해 보건대, 단체나 모임 같은 건 출입을 삼가는 게 좋겠다. 만남을 최대한 줄이고 독서와 글쓰기에 올인하기로. 감당 못할 감정의 분출 역대급 쓰나미로 몰려오면 어쩔 것인가. 자기혐오나 자존감 상실은 갱년기 우울과 맞춤한 짝이 되리란 우려도 한몫했다. 혼자라서 외롭지 않겠냐고? 글쎄다. 어느 쪽이 더 견디기가 쉬울지는 두고 보겠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하지 않나. 열일 제치고 달려와 줄 사람들은 멀고도 머니 무리수를 둘 필요도 없겠고. 이 시기가 지나면 노년기가 찾아올 테니 마지막 청춘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겠다. 멋지지 않은가, 다시 찾은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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