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갔는가? 에세이를 쓰고 싶은가? 그것도 잘 쓰고 싶은가?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여행을 갔는가? 에세이를 쓰고 싶은가? 그것도 잘 쓰고 싶은가?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작년에 짧은 문학 여행을 두 번 다녀온 후 여행기를 쓰려고 했으나 하나는 성공하고 하나는 실패했다. 시간이 지나고 일상에 익숙해지자 감흥도 사라지고 기억도 희미해져서. 두 번째 여행기는 초고만 써놓고 결국 해를 넘겼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명언이다. 미룬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부담만 눈덩이처럼 커질 뿐.
1월 초 리스본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특별했다. 처음으로 여행지에서 매일 글쓰기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타이밍도 좋았다. 없는 계획도 끌어다 세워야 하는 새해 아닌가.연초부터 글쓰기를 건너뛸 만큼배짱이 두둑하지도 않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다. 새해 첫 시작부터 글쓰기를 미루면 한 해가 얼마나 찝찝하겠는가.
대가족이 움직이는 여행이라 개인 시간을 내기는 힘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 시간이 날 지도 몰랐고, 시간이 난다 해도 나만의 문학 여행도 완수해야 했다. 거기다 새어머니 앞에서 날마다 폰에만 머리를 박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출발하는 날 뮌헨 공항에서 그런다고 한 소리 들었기에. 남편이 글을 쓴다고 전했다가 본전도 못 건진 모양이다. 새어머니가 맞다. 그게 뭐가 대수인가. 글이 밥 먹여주나.
작년 여행기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작정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말고 할 여유도 없었다. 무조건 썼고 써야 했다. 하루 한 편 글쓰기를 누가 시켰나? 내가 좋아서 한 일. 주 5회 글쓰기는 생존의 문제이자 존재의 의미이기도 해서. 나, 살아 있어요! 그러니 잊지는 말 것. 내가 돌아가는 그날까지.
호텔방은 욕실을 사이에 두고 아이 침대와 부부 침대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것을 십분 활용했다. 남편과 아이를 한 곳에 몰아놓고 아이 침대로 가서 글을 쓰는 작전은 유효했다. 최소한 그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양심의 면죄부는 되어 주었기에. 칸막이가 없어 불빛이 새어나가는 건 어쩌지 못했다. 여행의 피로가 남편과 아이를 숙면으로 이끌기를 바랄 수밖에.
여행 직전인지 직후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아이가 이런 불평을 했다. 엄마는 밥 차려주는 것 말고는 글쓰기만 생각한다고. 아이의 의도와는 달리 이런 소리는 나를 즐겁게 했다. 엄마이면서 한 인간으로, 아내이면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세 역할 사이에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닌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이 내겐 절실했기에.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함께도 살 수 있다. 안에서 새지 않아야 밖에서도 새지 않는다. 이쪽과 저쪽, 이 생과 저 생, 그리고 너의 삶과 나의 삶. 20대에 수녀가 되겠다던 언니에게 고귀한 영혼이 우리에게 들려준 말. 선 긋지 말고 살 것. 그를 영원히 기억하는 이유. 그의 말은 옳았다. 다시 만나면 꼭 전해주고 싶다. 잊지 않고 살고 있다고. 여행기를 쓰고 싶은가? 당신의 이야기는 풍경 속에만 있지 않다. 그것을 기억하는 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