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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an 15. 2019

여행 에세이를 쓰는 법

리스본에서 매일 써봤다


여행을 갔는가? 에세이를 쓰고 싶은가? 그것도 잘 쓰고 싶은가?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여행을 갔는가? 에세이를 쓰고 싶은가? 그것도 잘 쓰고 싶은가?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작년에 짧은 문학 여행을 두 번 다녀온 후 여행기를 쓰려고 했으나 하나는 성공하고 하나는 실패했다. 시간이 지나고 일상에 익숙해지자 감흥도 사라지고 기억도 희미해져서. 두 번째 여행기는 초고만 써놓고 결국 해를 넘겼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명언이다. 미룬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부담만 눈덩이처럼 커질 뿐.


1월 초 리스본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특별했다. 처음으로 여행지에서 매일 글쓰기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타이밍도 좋았다. 없는 계획도 끌어다 세워야 하는 새해 아닌가. 연초부터 글쓰기를 건너뛸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도 않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다. 새해 첫 시작부터 글쓰기를 미루면 한 해가 얼마나 찝찝하겠는가.


대가족이 움직이는 여행이라 개인 시간을 내기는 힘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 시간이 날 지도 몰랐고, 시간이 난다 해도 나만의 문학 여행도 완수해야 했다. 거기다 새어머니 앞에서 날마다 폰에만 머리를 박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출발하는 날 뮌헨 공항에서 그런다고 한 소리 들었기에. 남편이 글을 쓴다고 전했다가 본전도 못 건진 모양이다. 새어머니가 맞다. 그게 뭐가 대수인가. 글이 밥 먹여주나.



작년 여행기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작정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말고 할 여유도 없었다. 무조건 썼고 써야 했다. 하루 한 편 글쓰기를 누가 시켰나? 내가 좋아서 한 일. 주 5회 글쓰기는 생존의 문제이자 존재의 의미이기도 해서. 나, 살아 있어요! 그러니 잊지는 말 것. 내가 돌아가는 그날까지.

호텔방은 욕실을 사이에 두고 아이 침대와 부부 침대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것을 십분 활용했다. 남편과 아이를 한 곳에 몰아놓고 아이 침대로 가서 글을 쓰는 작전은 유효했다. 최소한 그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양심의 면죄부는 되어 주었기에. 칸막이가 없어 불빛이 새어나가는 건 어쩌지 못했다. 여행의 피로가 남편과 아이를 숙면으로 이끌기를 바랄 수밖에.

여행 직전인지 직후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아이가 이런 불평을 했다. 엄마는 밥 차려주는 것 말고는 글쓰기만 생각한다고. 아이의 의도와는 달리 이런 소리는 나를 즐겁게 했다. 엄마이면서 한 인간으로, 아내이면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세 역할 사이에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닌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이 내겐 절실했기에.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함께도 살 수 있다. 안에서 새지 않아야 밖에서도 새지 않는다. 이쪽과 저쪽, 이 생과 저 생, 그리고 너의 삶과 나의 삶. 20대에 수녀가 되겠다던 언니에게 고귀한 영혼이 우리에게 들려준 말. 선 긋지 말고 살 것. 그를 영원히 기억하는 이유. 그의 말은 옳았다. 다시 만나면 꼭 전해주고 싶다. 잊지 않고 살고 있다고. 여행기를 쓰고 싶은가? 당신의 이야기는 풍경 속에만 있지 않다. 그것을 기억하는 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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