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Jan 17. 2019

산드라의 노래

독일의 학부모


산드라가 떠난 자리에 이 노래가 조용히 들어와 앉았다. Pino Daniele의 'Anna Verra'.



파스텔톤 하늘색과 핑크빛이 하늘을 물들인 아침이었다. 아이의 학교 지각을 면하려고 서둘러 걷느라 그 하늘을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폰이 백팩 안에 들어 있었던 탓도 크다. 후회막급. 이런 하늘을 이 겨울에 몇 번이나 더 본다고. 어제보다 더 예쁜 하늘. 어제 아침부터 날이 개었다. 눈이 다 녹는다며 아이는 조바심을 냈다. 어제는 학교를 마친 아이의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동선을 길게 잡고 걸었다. 한겨울 늦은 오후의 햇살이 따뜻했다. 이자르강 다리도 건넜다. 강물에 비친 석양이 장관이었다. 아직도 눈이 가득한 강변 공원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눈 위를 걷자 낙엽 위를 걷던 지난가을이 생각났다.


학교 앞에서 새해 처음으로 한나 루바의 엄마 레나테를 만났다. 김나지움에 다니는 큰 딸이 있는 레나테는 작은 뮤지엄에서 일한다. 넉넉한 체구처럼 언제 만나도 편안한 사람. 학교 앞에서 카페 이탈리까지 몇 분도 걸리지 않는 길을 같이 걸으며 밀린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바라본 환상적인 하늘도 포기했다. 후회는 없다. 인생은 선택이지. 하늘은 또 보겠지만 사람은 때를 놓치면 다시는 못 만난다. 만남이 적으니 사소한 인연조차 소중히 여기게 되는 건 독일이 선물한 미덕이다.



카타리나 엄마도 학교 앞에서 잠깐 보았지만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다. 우리 반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여럿이다. 카타리나가 세 명, 한나가 두 명. 또 누가 있지?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한다. 언제는 안 그랬나. 이런 나를 봐주기로 한다. 나 자신과 잘 지내야 할 나이. 그렇지 않으면 울분에 찬 노년을 맞이할 위험이 있다. 내가 아는 이태리 사람 어머니는 치매에 걸린 후부터 매일 노래를 부르신다고 했는데. 구슬픈 노래 말고 햇살처럼 밝고 기쁜 칸초네 말이다. 이른 아침 발코니에서 생의 기쁨을 노래하시는 할머니. 사랑에 빠진 20대처럼.


명의 카타리나 중 우리 아이와 친한 카타리나 엄마는 나와 동갑인데, 그 엄마도 김나지움에 다니는 아들이 있고 뮤지엄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지금까지 차 한 잔 나누지 못했다. 언제나 바쁘고 인상도 강해서 쉽게 말을 붙이기가 어렵다. 오늘 아침 만난 카타리나 엄마 산드라와도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다. 오늘 아침 같이 차를 마시기 전까지는. 레나테와 헤어져 카페 이탈리로 왔다. 언제나처럼 텅 빈 테이블 중 하나에 백팩과 코트를 걸어놓고 바 쪽으로 가서 카푸치노와 녹차 한 잔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산드라가 인사를 했다. 아침에 집에서 커피를 못 마시고 나왔단다. 그녀와는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매일 4시간을 카페에 머문다는 사실을 알고 산드라는 놀랐다. 뭘 놀라나. 더 길게 있을 수도 있는데. 내 나이를 묻 또 놀라는 산드라. 미안해 산. 내 멋대로 애칭을 붙인다. 물론 맘 속으로만. 아침부터 몇 번을 놀라게 하는구나. 우리는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엄마들이 애들 얘기 말고 뭘 하겠는가. 산드라는 혼자 자랐단다. 거기다 카타리나까지 혼자라고. 그 얘기를 할 때 그녀의 쓸쓸함이 좁은 테이블을 건너 내게로 전해졌다. 시누이가 애가 다섯인데 뮌헨에 안 산다고. 나도 모르게 나오는 탄식. 아, 어쩌라고!         


유럽에서 유일하게 못 가 본 곳이 리스본이라며 리스본의 트람 사진을 보며 경탄했다. 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 대한 경험 중 최고는 싱가포르에서 체류한 사흘이란다.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도 어디선가 들었는지 아이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란다. 그래서도 안 되고. 맞아!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겠는가. 다만 모두가 그 시스템에 동의하는 건 아니고 문제의 심각성도 알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또 놀란다. 그게 뭐 놀랄 일이라고. 한국 사람들도 심장이 있고 뇌도 있는데. 설마 서울 독일학교도 같은 시스템은 아니겠지? 나를 놀라게 한 산드라의 질문.



나머지는 다 좋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와의 대화를 즐거워했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나도 그랬으니까. 멀리 살아서 같은 동네에 우리 반 아이가 하나도 없단다. 우리도 율리아나 밖에 없어. 통성명은 가장 나중에 했다. 얼굴은 알아도 이름을 모르는 엄마들이 태반이므로. 당연히 그들도 내 이름을 모른다. 발음도 오죽 어려워야지. 한국에선 제법 잘 나가던 이름이었는데. 내 이름? 그냥 '유'라고 불러. 얼마나 간편한가.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지? '너'라고 불러! 나는 '너'야! 우리는 볼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조용히 자리에 앉는데 이 노래가 들려왔다. Pino Daniele의 'Anna Verra'. 이태리 카페라서 매일 이태리 노래가 들리는데 귀에 꽂히는 노래가 있을 땐 네이버 음악을 검색한다. 참 편리한 세상. 산드라가 떠난 자리에 조용히 들어와 앉던 그 노래. 그 노래 뒤엔 통유리. 하늘이 어찌나 맑고 푸른지 지금이 겨울이라는 사실마저 깜빡 잊었다. 약간은 쓸쓸하고 조금은 경쾌했던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산드라가 떠오르겠지. 오늘 아침 Anna Verra의 노래는 내게 산드라의 노래가 되었다. 언젠가 작별의 노래를 보내준 누군가처럼. 오래된 그 노래가 한 사람의 노래로 남은 것처럼. 아, 그리고 앨범의 제목은 이렇다.  <Yes I Know My Way>. 나도 안다, 마이 웨이.


작가의 이전글 여행 에세이를 쓰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