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녹차와 새해를 시작하다
뮌헨의 티하우스 Teehaus
차 한 모금을 입에 가득 머금자 내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향긋하고 부드럽고 맑은 녹차의 맛! 그게 고향의 맛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시 일상. 아이는 피곤해하면서도 개학 첫날에 지각은 면하고 싶은지 졸린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어젯밤 리스본에서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저녁 9시. 공항에서 S반을 타고 뮌헨 중앙역으로 오는 길에 파파와 방학 숙제인 작문을 마쳤고 집에 도착 후 만년필로 숙제용 노트에 깨끗하게 옮겨 썼다. 독일 초등 3학년의 독일어 수업이 어디에 중점을 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편은 긴장이 풀렸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취침.
1년에 한 번 새어머니가 초대하는 가족 여행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사소한 아침 식사 시간부터 매일의 일정을 조정하는 건 남편의 일. 개인의 의견이 확실한 독일 사람들답게 가족 간이라 해도 억지로 서로에게 맞추진 않는다. 내 눈에는 그게 참 신선하다. 서로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큰 소리가 나거나 직접 충돌하지도 않고. 본인들이 없을 때 슬쩍 한 마디 흉을 보태거나 어깨를 으쓱하기는 한다.
2주 방학인데도 크리스마스와 함께 달려온 끝이어서인지 오랜만에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어젯밤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바바라는 자주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부터 사월까지 긴긴 겨울을 어떻게 견디나 뭐 그런 뜻. 힘 내, 바바라! 1주일에 하루씩 퇴근 후 이태리어 강습, 태극권, 댄스 그리고 알리시아 책 읽어주기까지 빠꼼한 날도 별로 없는데. 나야 여름에 한국에 들어갈 날만 고대하며 견딘다. 그게 부러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새해에는 요가 수업을 바꾸었다. 조금 더 젊고 액티브한 여자 선생님과 오늘 아침부터 아옌가 요가를 시작했다. 어젯밤 급히 메일을 보냈더니 아침에 자리가 있다는 답장이 와 있었다. 대답이 기대만큼 빨라서 마음에 든다. 이 선생님의 특징은 다양한 요가 보조 용품을 사용한다는 점인데 단단한 끈인 요가 스트랩이나 요가 블록 같은 것. 바닥에 앉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독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나 역시 대만족!
오늘은 요가 후 티하우스에 갔다. 평소 눈여겨봐 두었으나 갈 기회가 많지 않았던 곳이다. 아이와 학교 가는 길 가운데에 있어 집과 학교 둘 다 접근성이 좋다. 무엇보다 밖에서 보는 분위기가 좋았는데 문제는 테이블이 낮아 글쓰기에 적합하진 않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와 보니 좀 고급스럽다. 앞으로 자주 올 것 같지는 않다. 어쨌거나 오늘 나를 감동시킨 건 녹차 한 잔! 이곳은 일본차 전문점이고 중국차도 많은데 한국차라고 별도로 명시한 제주 녹차를 발견한 것이다.
주문을 받던 젊은 여자가 조금 놀라는 눈치. 이건 새로 시작한 메뉴란다. 오호! 작은 보온병에 든 뜨거운 물로 찻잔에 세 번 정도 우려 마실 수 있는 녹차 가격은 4.80유로. 보통 티백차 가격이 3유로 정도. 전체 양은 비슷한데 유기농 차라는 것과 진짜 찻잎을 마실 수 있다는 게 차이다. 차를 마시기에 최적의 분위기는 덤. 주로 나무를 쓴 찻집의 색조와 조명의 톤이 부드럽고 편안하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그녀는 반색하며 한국 음식 팬이란다. 여긴 한국 음식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데.
오전 11시경 내가 들어올 때는 거의 비어 있던 찻집이 정오를 지나자 꽉 찬다. 간단한 런치 메뉴가 있는 모양이다. 이 찻집의 모토가 건강이니 메뉴도 유기농일 듯하다. 그건 그렇고 제주 녹차의 맛은 어땠을까? 궁금하실 분이 계실지도 몰라 밝히자면 차 한 모금을 입에 가득 머금자 내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 올리자 맑은 샘물이 살짝 출렁이며 넘치는 것 같다고 할까. 향긋하고 부드럽고 맑은 녹차의 맛! 그게 고향의 맛이 아니고 무엇이랴. 향수를 달래주었으니 비싸다고 할 순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