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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an 29. 2019

소녀여, 너는 어디로

크리스탈을 위하여


아이와 같은 반인 흑인 소녀 크리스털. 덩치도 크고 키도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커서 늘 눈에 띄는 아이. 부모가 없어서 삼촌 숙모와 살았다.
Slow dance(Kerry James Marshall, 미국, 1955~)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크리스털이 더 이상 삼촌 숙모랑 같이 안 산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크리스털에 대한 염려가 내 무의식 어딘가에 늘 잠재해 왔던 것일까. 크리스털은 아이와 같은 반에 있는 흑인 소녀다. 덩치도 크고 키도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커서 늘 눈에 띄는 아이였다. 부모가 없어서 삼촌 숙모와 살았다.


크리스털의 삼촌과 숙모는 서른 초반이나 중반쯤 되는 흑인 부부였다. 밝은 성격에 근육질의 몸을 가진 크리스털 삼촌과 아담한 체구에 조용하고 착하게 생긴 숙모는 작년에 첫아기를 낳았다. 베이비 시스터가 생겼다고, 젊은 숙모가 아기를 안고 크리스털을 데리러 오면 아기의 손과 발을 흔들며 좋아했는데. 그러고 보니 요 며칠 크리스털을 못 본 것 같았다.


그 집에도 몇 번 갔었다. 최근에 간 건 크리스털의 생일날이었다. 방 두 개 아파트였는데 크고 오픈된 거실과 부엌이 집의 절반을 차지하는 모던한 집이었다. 거실은 해가 잘 들었고 삼촌 숙모가 쓰는 침실 하나와 크리스털이 쓰는 방 하나. 크리스털은 그 방을 절반으로 나누어 안쪽 창가 쪽을 사용했다. 입구 쪽 절반은 옷방이었는데, 아기가 태어났으니 아기 방도 필요했겠다. 거기다 조카를 거둔다는 것이 창가에 의자를 내놓거나 화분을 들이듯 쉬운 일인가.



아이가 말했다. 며칠 동안 크리스털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담임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크리스털이 새로 살아야 하는 시설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서 학교에 못 오는 거란다. 고아원은 아니고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쉼터나 자활센터인 듯하다.  다행히도 학교는 계속 다닌다고.


선생님이 크리스털과 관련해서 아이들에게 당부한 것은 두 가지였다. 크리스털이 자발적으로 바뀐 환경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경우 절대로 캐묻지 말 것. 친절하게 대할 것. 부모란 무엇인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효자나 착한 며느리도 악처만 못하다는 속담처럼,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부모'란 '생존'과 동의어다. 좋아도 나빠도 필요 불가결한 존재. 10년은 가혹하고, 최소 20년.


아이에게 몇 가지를 더 묻자 모르겠다며 인형과 놀기 시작했다. 친구의 문제가 피부에 와 닿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하지. 직접 겪지 않는 한 누구도 남의 고통에 100% 공감하지 못 한다. 무엇보다 내 눈의 티끌이나 손의 가시가 더 생생하지 않은가. 아이에게 친구에 대한 동정심을 불어넣을 생각은 없었다. 나 역시도 경계해야 한다. 크리스털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동정이 아닌 우정일 테니까.


크리스털이 헤쳐 나갈 길이 희망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누구나 홈리스에서 하버드 4년 장학생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니. 부디 낙오하지 말고 언젠가 이 사회에서 그녀만의 자리를 찾아내기를 바란다. 케리 제임스 마샬의 그림처럼 느리더라도 자기만의 템포로 슬로 댄스를 출 수 있는 푸른 방 하나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 공부도 책 읽기도 영어도 잘하니 아주 희망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크리스털에게 거는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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