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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04. 2019

엄마가 돌아가셨다

독일어로 까뮈 <이방인> 읽기


이런 첫 문장이 있나. 일답 쉽다. 이해가 된다. 최소한 첫 문단이. 그것도 명쾌하게! 단번에 까뮈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런 첫 문장이 있나. 일답 쉽다. 이해가 된다. 최소한 첫 문단이. 그것도 명쾌하게!


Heute ist Mama gestorben. Vielleicht auch gestern, ich weiß nicht.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잘 모르겠다.)


단번에 까뮈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정도는 되어줘야 계속 읽어나갈 용기가 생기지. 작년에는 작별도 많았다. 호프만과 플로베르와 카프카와 헤세를 차례로 결별하고 돌아설 때의 씁쓸함이라니. 몇 페이지가 뭔가. 솔직하게 말하자. 한두 문장만으로 책을 내던지고 싶은 적이 많았다. 그중에는 한 챕터나 두 챕터 혹은 중단편 하나를 뗀 적도 있지만 책을 덮을 때면 어김없이 떫은 감을 베어 문 것처럼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부상당한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는 카뮈의 문장들을 보라. 짧은 첫 문단이 이해가 되자 계속 가보기로 한다. 보스에게 휴가를 신청할 것이고, 이 상황이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항변한 후 금세 후회하고, 버스를 타고 졸면서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겠지. 카뮈와 대면한 건 우연이었다. 마치 법정에서 마지막 증인이었던 레몽이 우리의 주인공이 그와 함께 바닷가에 있었던 것이 우연의 결과였다고 증언한 것처럼.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날씨는 흐렸다. 아이와 나는 하굣길에 걸어왔다. 겉이 우툴두툴한 파니니 빵을 사느라 가진 동전을 다 써버렸고, 아이가 학교에 들고 가야 할 그림 보관용 종이 파일을 사기 위해 은행부터 들렀다. 독일의 문방구는 질이 좋은 만큼 비쌌다. 종이 파일이 6유로였다. 우체국 앞 로또 가게였는데 한국의 편의점처럼 대중교통 차표에서 사탕과 장난감과 문구류와 심지어 파싱이라는 독일 핼러윈용 가발까지 작은 가게 안에  있었다. 


까뮈의 <이방인>을 만난 것도 그날이었다. 책값은 고작 1유로였다. 로또 가게 옆의 우체국과 이자르 강변 서점 사이였다. 프라우엔 호프 슈트라세라는 그 거리에는 오래된 앤티크 가게가 있는데 창문 앞 길가에 작은 테이블을 내놓고 중고 책들을 팔았다. 먼지가 앉고 빛바랜 미술 화보들 사이로 고전 책들도 몇 권 있었다. 그날 무슨 책들을 샀더라. 네 권에 총 9유로를 지불했다. 그중 하나가 이방인이었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1유로, 카프카의 <밀레나에게 쓴 편지>가 2유로,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가 무려 5유로나 했는데, 우아하고 매력적인 삽화 때문에 안 사기가 더 어려웠다. 주말에는 이방인 번역본도 찾아놓고 이방인에 관한 유튜브 2개를 검색했다. 김치를 담그며 들은 건 <TV, 도서관을 가다-이방인 편>이었고, 하루 종일 눈이 폭폭 내려 쌓이던 일요일엔 <외국문학 오디오북-이방인 편> 낭독을 장장 4시간 동안 우리말로 들었다. 



처음 경찰에서는 내 사건에 아무도 흥미를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예심판사는 그와 반대로 나를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 그는 분별력이 있고, 입술을 쫑긋거리는 신경질적인 버릇이 있기는 해도 그럭저럭 호감을 느낄 수 있을 듯이 보였다. 방을 나서면서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려고까지 했지만 때마침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상기했다.


이튿날 변호사 한 사람이 형무소로 나를 만나러 왔다. (..) 그날 마음이 아팠냐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 질문은 나를 몹시 놀라게 했다. (..) 나는 자문해 보는 습관을 잃어버려서,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그러자 변호사는 내 말을 가로막았는데, 매우 흥분한 듯이 보였다. 그는, 그러한 말은 법정에서나 예심판사의 방에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며 나를 다그쳤다.


신문기자는 웃음을 띠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 그는 마치 살찐 족제비처럼 작달막하고, 큼직한 검은 테 안경을 쓴 사나이를 가리켜 보였다. 파리에 있는 모 신문사에서 특파된 기자라는 것이었다. "하기야 당신 사건 때문에 온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직계존속 살해 사건에 관한 보도를 맡은 까닭에, 당신의 사건도 한꺼번에 기사로 만들어 보내라는 지시를 받은 겁니다." 그 말에 대해서도 나는 하마터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할 뻔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스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의 오디오 낭독을 들으며 나는 심각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몇 번인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기도 했는데 바로 저런 대목들을 마주할 때였다. 예전에 읽은 이방인은 무엇이었나. 내가 생각한 뫼르소는 어떤 존재였나. 어쩌면 개똥밭의 이승이라는 공식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뫼르소의 말처럼 아무도, 아무도 그의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으므로.


사형 선고를 받고 면회를 온 부속 사제를 쫓아낸 후에야 그는 마침내 '평정'을 되찾았고, '희한한 평화'가 밀물처럼 그의 속으로 흘러들었으며,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 세계가 그렇게도 자기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는데, 그의 감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게도 전해져 왔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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