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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22. 2019

린다와 이방인을 읽는 시간

독일어 시간


명사와 동사. 동의어와 반대어. 고급 표현까지. 테이블 위에서 종횡무진 펼쳐지는 독일어의 향연은 황홀했다.


린다와는 지금까지 세 번을 만났다. 린다를 만나는 날엔 늘 해가 나왔다. 해가 비치는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린다를 만나러 가는 날이면 뮌헨에 봄이 일찍 올 것 같다는 생각. 세 번째 날 뮤지엄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잔디밭에서 보랏빛 꽃을, 다음 날 이자르 강가 산책길에서는 노란색 꽃들을 목격했기에 더더욱. 책 읽을 장소는 린다에게 맡겼다. 내가 아는 곳이 많지 않았고,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클 듯해서. 고심하던 린다는 퓐프 콘티넨테 뮤지엄 카페를 제안했다. 빅투알리엔 마켓에서 뮤지엄까지 걷는 동선이 간편했다. 이자 토어를 지나 걸어서 15분.


둘째 날 린다는 지각을 했다. 난 유례없이 1시간 전에 도착했고. 우반이 예고도 없이 출발하지 않는다 했다. 마리엔 플라츠에서 내려서 뛰어오는 중이라 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도착하고도 무척 미안해했다. 미리 문자를 받았고, 괜찮으니 천천히 걸어오라고 누누이 말했는데도. 나에겐 책이 있고, 그날은 공부할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도 그런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므로. 헤어지는 순간에도 다시는 늦지 않겠다고 다짐한 걸로 보아 그녀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 같았다.


조카가 린다에 관해 들었다며 전해준 말이 생각났다. 린다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남동생과 둘이 살았단다. 그래서 과외일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고. 린다와 반년 넘게 공부해 온, 이제는 그녀와 친구가 된 한국 여자분이 그랬단다. 무슨 일을 해도 그럴 사람 같았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남동생과 둘이 살아서, 그렇지 못한 정반대의 사례도 많을 거라는 말은 조카에게는 안 했다. 민폐 끼치기를 싫어하고, 지나친 호의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 린다에게 매긴 점수를 조금 높였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린다와는 <이방인>을 읽고 있다. 두 시간 동안 입술에 경련이 나도록 읽지만 매번 세 장을 넘기지 못한다. 내가 읽고 린다는 듣는다. 발음이 틀린 곳은 교정해 주면서. 한 문단을 읽고 어떤 내용인지 얘기해 보란다. 잘못된 표현은 고쳐준다. 명사와 동사. 동의어와 반대어. 고급 표현까지. 테이블 위에서 종횡무진 펼쳐지는 독일어의 향연은 황홀했다. 때로는 질문이 수류탄처럼 떨어지기도 한다. 뫼르소는 왜 엄마 관 앞에서 담배 피우기를 주저했다고 생각해? 관례에 어긋나서? 엄마 앞에서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어서가 아닐까. 오, 그럴 지도! 첫 번째 날에는 애도의 표현을, 두 번째 날에는 눈물에 관한 표현을 배웠다.


뮌헨에 온 지 세 계절만에 집을 여러 번 옮겼다는 이야기는 나도 린다에게 직접 들었다. 왜냐고는 묻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 자주 이사를 하고 싶겠는가. 그런 사정은 캐지 않고 묻어두는 게 낫다. 지금 사는 아파트를 셰어 하는 사람은 화가라고 했다. 그림도 글도 같은 예술 분야이니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지 않겠냐며 비로소 집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말도 곁들였다. 두 번 공부를 하더니 조심스럽게 이런 제안도 한다. 내 독일어 문법을 한번 짚어주고 싶단다. 콜! 무엇이든 좋다. 어떤 방법도 괜찮다. 그녀와 함께라면.     


아직도 우리 앞에는 장례식 후 뫼르소가 마리를 만난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시간들이 남아 있다. 뫼르소와 함께 나도 린다와 가야 할 길이 멀다. 그가 재판정의 원고석과 감옥 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세상과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를 끌어안고, 불구덩이 속을 걷고, 차가운 별빛을 사유하고, 마침내 새벽의 뱃고동 소리가 들려 올 때까지 말이다. 그녀와 책 이야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린다의 나이는 서른. 그녀처럼 소비에트 해체 이후를 산 세대가 가진 정서나 감각은 독일뿐 아니라 지구 상의 어느 나라의 세대들과도 같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그 시절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그녀가 기꺼이 얘기해 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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