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The Only Story> 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이 남자, 반스. 줄리언 반스를 읽는다. 문체가 끝내준다. 젊다. 문제의식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랑에 대한 질문들. 섹시한 스타일. 외설스럽지 않은 표현들. 그가 빤스 얘기를 한다 하더라도 그의 문장은 반스적 품위와 품격을 굳건히 지켜낼 것이다. 올해 일흔이 넘은 작가의 글에 나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도 반전. 비록 이 책이 훨씬 이전에 쓰였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그의 첫 문장을 보라!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얼마나 사랑할지, 제어가 가능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대신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사랑만은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할 이야기가 단 하나밖에 없다. (..)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최종적으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이건 내 이야기다.
시간, 장소, 사회적 환경?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기억은 기억하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정리되고 걸러진다. (..) 기억은 무엇이 되었든 그 기억을 갖고 사는 사람이 계속 살아가도록 돕는 데 가장 유용한 것을 우선시하는 듯하다. 따라서 행복한 축에 속하는 기억이 먼저 표면에 떠오르게 하는 것은 자기 이익을 따르는 작용일 것이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운 거야. 그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지. 우리 모두 그저 안전한 장소를 찾고 있을 뿐이야. 만일 그런 곳을 찾지 못하면, 그때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워야만 해.
때로는 어떤 쌍을 보면 서로 지독하게 따분해하는 것 같아. (..) 하지만 그들이 함께 사는 건 단지 습관이나 자기만족이나 관습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한때, 그들에게 사랑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야. 모두에게 있어. 그게 단 하나의 이야기야.
독일을 비롯 일본, 중국, 싱가포르를 거쳐 다시 독일로 왔다. 잠깐 살거나 방문했던 곳까지 치면 다 헤아리기도 어렵다. 자주 그런 질문을 받기도 하고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답을 얻지 못했다. 아마 얻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그 편이 나을 수도 있고. 어디가 가장 마음에 들던가. 어디서 가장 살고 싶은가. 글쎄. 어디도 편안하지 않았고, 어디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 모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았고, 그래서 좋았다. 그러면 한국이 제일 낫냐고 묻고 싶겠지. 잘 모르겠다.
첫사랑은 삶을 정해버린다. (..) 첫사랑은 그 뒤에 오는 사랑들보다 윗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그 존재로 늘 뒤의 사랑들에 영향을 미친다.
첫사랑은 늘 압도적인 일인칭으로 벌어진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압도적 현재형으로. 다른 인칭들, 다른 시제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나중에 오는 것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현실성에 근접한 것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심장이 식었을 때 오는 것이다.
사랑은 평생 동안 찌푸려온 얼굴이 갑자기 활짝 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 내 영혼이라는 허파가 순수한 산소로 부풀어 오른 것 같은 느낌이다.
주인공들의 친구였던 조운의 충고대로, 진실은 친절하지 않았다. 이 말이 내게는 인생은 친절하지 않았다, 로 들린다. 혹은 사랑도.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의 말대로 배짱이 있고, 사랑이 있었음에도 만일 인생에서 그걸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인생은 어떻게 해도 만족스러울 수 없을 것이다. 내 감상은 여기까지. 더 이상의 신탁은 발설하지 말기로 하자. 내가 다 캐내버리면 어쩌냐고? 걱정하지 마시라. 아직도 남은 금은 많다. 줄리언 반스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가 오랫동안 줄을 그어 지워버리지 않은 사랑에 대한 진지한 기록은 그대로 책 속에 남긴다. 당신이 직접 경험하시라. 사랑이 재앙이 되는 접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