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늙을까> 다이애너 애실, 뮤진트리
내가 단번에 반해버린 건 그녀의 솔직함.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솔직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타고난' 미덕이 아닐까.
시작은 이렇다. 다시 시작된 주말. 토요일 아침은 한글학교라는 함정이 버티고 있음에도 느긋한 아침 식사가 가능하다. 아이는 말도 못 하게 일찍 일어나고, 남편이 빵과 커피를 사러 동네 빵집에 간 사이 식탁을 차리는 건 내 몫. 계란 오믈렛. 접시와 나이프와 포크를 놓고, 치즈와 살라미와 필라델피아식 바르는 치즈까지. 사과나 오렌지 같은 과일 한 접시만 추가하면 끝. 간편하고 고마운 독일식 아침 식사다.
그날 저녁 남편은 일본 출장을 떠날 예정이었다. 뭘 사 오지? 뭘 사 오긴. 일본 쌀? 그의 물음에 같이 킥킥거리다가 끝. (20년쯤 함께 살다보면 그렇게 된다. 심지어 내 생일을 잊어버려도 아무렇지도 않다.) 독일에 드나든 지 20년. 쌍둥이 칼 하나 사 들고 귀국해 본 적이 없다. 자랑이 아니고 팩트가 그렇다는 말이다. 무관심과 게으름이 정답이다. 여기 살면서도 미루는 게 마트에서 장보기다. 피곤하기 때문에. 어디 가면 마트부터 들르고, 거기서 1시간도 놀 수 있다는 조카를 그 이유만으로 존경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아이를 울리는 법과 파파를 감동시키는 법은 한 뿌리에서 나온다. 파파의 출장이 길면 길수록 진동과 파동이 크다. 물꼬를 터뜨리는 것도 내 몫. 아니면 누구겠는가. 파파 오늘 출장이야. 언제 오는데? 아이의 눈이 커지면서 눈물이 차 오르는 대목은 언제 봐도 놀랍다. 의자 등받이로 상체를 기대며 내가 대답했다. 화욜! 찰랑거리던 샘물이 파파 쪽으로 넘칠락 말락 기운다. 그렇게 길게? 남편의 손이 식탁 건너 아이 쪽으로 건너가고. 연인들 못지 않은 애틋한 작별이었다.
한글학교에서 돌아온 토요일 오후는 길었다. 돌아올 파파가 없는 아이의 시간은 정지된 듯했다. 보다 못해 아이와 수영장까지 다녀왔다. 이런 건 파파 몫인데. 집에 오니 밤 9시. 아이는 쓰러져 잠이 들고, 나는 한국에서 건너온 책을 골랐다. 카페에서 글 쓸 때, 독일어 공부할 때 맛있는 라테 한 잔 마시라며, J언니가 고이 접어둔 엽서가 들어있던 책, <어떻게 늙을까>. 난방 매트를 켜고 언니의 마음을 펴 들자 마치 한국의 겨울이 나를 위해 준비한 따스한 아랫목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이 책은 영국 안드레도이치 출판사에서 일흔다섯까지 50년 가까이 편집자로 일했던 다이애너 애실이 그녀 나이 구십에 쓴 책이다. 그녀는 새해에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단번에 반해버린 건 그녀의 솔직함.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솔직해지는 건 아니지 않나. 그거야말로 '타고난' 미덕이라 하겠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들.
젊은 시절 허황된 낭만적 사랑에 그토록 쩔쩔매고 나서야 누군가의 정부로 사는 게 내게 딱 맞는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뭐 이런 커밍아웃이 다 있나. 젊은 시절 들었더라면 이런 여자가! 했을 텐데. 나이 드니 좋은 점 한 가지는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본인이 그렇다는데야. 오십이 되자 어떤 일에도 흑백 논리를 앞세우지 않게 되는 건 차라리 즐거움에 가깝다. 그녀 스스로 유감스러운 두 가지로 자신의 냉정함과 게으름이라고 밝히는 당당함까지. 저러기가 쉽지 않다는 건 우리 모두 안다.
내가 후회하지 않는 일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아이가 없다는 것이다. (..) 나는 보기 드물게 모성이 별로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건 타고난 결함인 듯싶다.
나이 들었기에 얻은 이득 중 마음 깊이 어떤 것도 중요치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모든 일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대목에서도 희망을 갖는다. 나도 그럴 것이다. 얼마나 인생이 가벼워지겠는가. 무려 두 챕터에 달하는 그녀의 남자들 편을 재밌게 읽은 만큼 내 관심을 끈 것은 그녀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다음과 같은 말에 특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 역시 뼈저리게 인정하는 점이기에.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없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는 '책' 하면 '소설'을 의미했는데 내겐 소설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상상력, 다시 말해 인물과 사건은 물론이고 (천재의 경우)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만들어내는 그 능력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녀 역시 '생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그 표현을 다른 사람에게 가져다 썼지만. 모든 행운 가운데 최고의 행운은 타고난 회복력이라는 그녀의 의견에도 공감하면서. 갱년기 증세로 우울해지기 쉬운 중년임에도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기분 변화 말고는 그럭저럭 적응해 가는 중이다. 적응해야지 어쩌겠는가. 새로운 인생의 리듬에 몸과 마음을 얹고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흔들리며 흘러가는 수밖에. 자기만의 등대를 밝히는 초록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유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