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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27. 2019

독일어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린다에게 혼나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공부란 씨앗을 뿌린 후 싹을 틔우는 것과 같다고. 기다려야 한다고. 물을 주고 햇볕을 받고 바람도 맞으며. 이런 고비도 잘 넘겨 가면서.



이건 좋은 징조다. 전에도 말했듯이 린다와 만나는 날엔 꼭 해가 나온다. 며칠 동안 날씨도 마음도 흐렸었는데. 린다에게 혼난 것만 빼면 말이다. 왜 독일어 책을 펴기도 싫던지. 대체 몇 번이나 했다고. 어제는 예습도 없이 린다를 만났다. 복습도 못하고 배운 걸 노트에 정리하지도 못했다. 도대체 뭘 한 건지. 주말까지 혼자서 진도도 더 나갔어야 했는데. 오늘 공부할 분량만큼 예전에 읽어놓은 것만 빼면 한 마디로 꽝이었다.


내 생각에 공부든 연애든 일이든 두 번의 고비가 온다. 어찌 두 번 뿐일까마는. 공부는 사흘 혹은 세 번째. 연애와 결혼은 삼 년.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이니 믿을 만한 통계를 내놓기는 어렵다. 그럼 다음은? 일주일 혹은 일곱 번째와 칠 년. 영어 어학연수 때 내 룸메였던 줄리아가 자기 부모님이 7년째 되는 해에 이혼을 했는데 아르헨티나에 그런 통설이 있다나 뭐라나. 그때까지 생각도 못했는데 줄리아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린다에게 혼났다. 내 공식을 갖다 대자면 린다와 공부를 시작한 지 세 번째였다. 린다, 이렇게 가다간 이 책 한 권 떼는데 1년도 넘게 걸리겠어. 그래서? 매달 다른 책을 하면 어때? 남은 부분은 내가 혼자 읽고. 이 책을 고른 사람이 누구였어? 나. 어린이책도 괜찮다고 했는데 꼭, 반드시, 이 책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한 사람은? 그것도 나였다. 이유가 뭐지? 진도가 너무 천천히 나가니 지겨워서 그래. 하나만 물어볼게. 공부에 왕도가 있다고 생각해? 아니, 모르겠어. 진짜로 없어? 정색을 한 린다의 네 마디는 다음과 같다. 궁금해? 알려줘? 잘 들어. 없어!!!  


신기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 게으르고 끈기가 없고 변덕이 심한 거 모르나? 나 말이다. 납작 엎드려 이렇게 말했다. 린다, 앞으로 내가 또 변덕 부리면 한 마디만 해 줘, 그만해! 린다가 한숨을 내쉬며 내 노트를 빌려갔다. 린다의 공식! 글쓰기와 아이와 가족과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1주일 단위로 구분해 놓고 거기에 독일어 공부를 아주 조금만 할애하라고. 매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공부란 씨앗을 뿌린 후 싹을 틔우는 것과 같다고. 기다려야 한다고. 물을 주고 햇볕을 받고 바람도 맞으며. 이런 고비도 잘 넘겨 가면서.



린다의 기운을 쏙 빼놓고 시작한 공부는 그럼에도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지난주에는 무엇을 했는지, 앞서 공부한 여섯 페이지를 완전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는 것도 무리 없이 해냈다. 첫 번째 챕터의 남은 세 페이지를 마치고 나자 40분이 남았다. 5분간 휴식을 했고, 린다는 화장실로 갔다.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린 걸로 보아 나이 많은 변덕쟁이를 데리고 끝까지 어떻게 가나 고민이 컸던 모양이었다. 두 번째 챕터까지 마치고 수업이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이를 키울 때도 그렇다. 아이들이 깝죽거릴 때는 정신이 번쩍 들도록, 눈물을 찔끔 쏟도록 혼내는 게 약이 될 때가 있다. 내 경험으로도 그랬다. 아이들도 때로는 혼란스러운 것이다.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이래도 되나, 안 되나. 그럴 때 부모가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교통정리를 해주어야 한다. 린다처럼.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칼 같이 잘라 말한 것처럼. 그래야 아이들은 혼나고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개운하고 후련한 기분이 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날은 저녁까지 쓰리 세트로 혼났다. 저녁에 내가 린다에게 혼난 이야기를 하자 아이가 말했다. 다른 엄마들은 일하는데 엄마는 놀지? 그러니까 독일어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올해까지 독일어 잘 못하면 나한테 혼날 줄 알아! 그날 알리시아는 율리아나 할머니 댁에 가서 율리아나 남매와 놀다가 왔다. 내가 데리러 가자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독일은 부부가 같이 벌어야 해. 혼자서는 월세 감당하기도 힘들어. 나 들으라고 하신 말씀 같았다. 지금까지 태국 사위 지미한테 하시던 말씀인데.


린다에게 혼났을 때처럼, 아이에게 혼날 때처럼, 할머니 말씀이 하나도 기 나쁘지 않았다. 저도 알아요, 할머니. 명심할게요.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할머니가 납득하실 만한 뾰족한 답을 드리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 그래도 알 수 있었다. 저런 게 어머니 마음이고, 할머니 마음이지. 할머니도 나도 지미도 외국인 아닌가. 여기서 오래 살려면 일이 있어야 하고, 편안한 노후는 일에서 온다. 3년쯤 글쓰기와 독일어에 전력을 기울여 보기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삼이란 숫자는 여러 모로 운명적이다. 독일어는 소한 1주일에 3일. 매회 3시간쯤 투자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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