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Mar 12. 2019

린다를 기다리며

독일어 책을 읽는 즐거움


올 상반기에는 린다와 <이방인>을 끝내고, 카프카의 <변신>까지 떼는 게 목표다. 여름에 한국을 다녀와서는 헤세의 <데미안>.


3/11(월) 오후 3시의 기온은 영상 4도. 3월이 되자 날씨가 추워졌다.


어제는 바쁜 월요일. 아침부터 뮌헨에는 눈이 내렸다. 그것도 펑펑. 기세로 보아 종일이라도 내릴 것 같던 눈은 정오를 지나자 그쳤고 잠깐 해가 나오자 깨끗이 녹았다. 2시에 일을 마치고 늦은 점심까지 먹고 나오자 눈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 있긴 있었다. 괴테 플라츠에서 젠들링어 토어까지 걸어오면 마리엔 플라츠로 이어지는 쇼핑 거리가 나오는데 그 거리의 시계 위로 눈이 아주 조금 남아 있었다.


어제는 조카의 생일이었다. 아이는 초콜릿을 선물하고 싶어 했지만 조카는 요즘 다이어트 중. 독일어 공부에 전력 중인 조카를 위해 한국에서 독일어 문법책을 공수했다. 조카가 원하던 책이었다. 미역국은 아침에 끓였다. 지금까지 생일이라고 따로 미역국을 끓인 적은 없었지만. 점심때 친구와 같이 와서 밥을 먹어도 되냐고 물어서 서둘러 비빔밥을 준비해 두었다. 그러느라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누가 말했나. 귀신 중에서도 마감 신이 가장 무섭다고. 나야 정해놓은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혼자 난리다. 그래도 날마다 기다려주는 독자가 몇 있으니 월요일부터 펑크를 내면 안 되겠다. 게으름이란 한번 부리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는 법. 새벽에 남편 출장 보내고, 아이 학교 보내고, 조카 생일밥 준비하고 나니 알바 가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딱 1시간. 오타를 수정할 틈도 없이 쓰고 올렸다. 성공이었다!



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독일어 책을 읽는 즐거움이라니! 독일어 공부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하나. 독일어 수업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하나. 뭐가 되었든 올 상반기에는 린다와 <이방인>을 끝내고, 카프카의 <변신>까지 떼는 게 목표다. 여름에 한국을 다녀와서 하반기에는 헤세의 <데미안>. 작년에 혼자서 본 책들이지만 그걸 봤다고는 말 못 하겠다. 린다와는 다르게 접근하므로. 문장을 낱낱이 해부까지는 못해도 중요한 어휘와 표현들을 반복해서 짚어준다. 


내가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지는 아직까지 린다에게는 비밀이다. 물론 린다는 어떤 책이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문학을 논하려는 게 아니라 문장을 읽고 이해하려는 것이므로. 언젠가는 읽으려고 중고 서점에서 눈에 띄는 대로 사 둔 얇은 독일어 문학책들이 책장 위에 한가득이다.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도 몰랐다. 물론 과외비도 내야 한다. 과외비는 직접 벌기로 했다. 그러자 즐거움이 두 배!


오늘 아침 아이는 내가 깨우기도 전에 혼자 일어나 부엌으로 왔다. 6시 45분이었다. 오늘 아침엔 학교에서 미사가 있는 날이다. 미사 중에 낭독할 부분을 아이들에게 읽게 하는데 자기도 지원했단다. 큰 발전이다. 미사에 꼭 오라고 했지만 글도 써야 하고, 알바 가기 전에 린다와 공부도 해야 한다. 아이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미안하지만 엄마에게도 엄마의 인생이 다. 어쩌면 그것이 아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이제 린다여 오라. 나는 준비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린다에게 칭찬을 받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