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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pr 02. 2019

창백한 화요일의 책 읽기

<이방인>의 마리를 생각하다


화요일은 남편과 아이와 조카를 차례로 보내고 나서야 내 차례가 되었다. 아침의 글쓰기. 린다와 독일어 공부. 서둘러 알바도 가야 하는데 립스틱 바르는 걸 잊어서 화요일은 언제나 창백한 하루.   



지난주 어느 날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그즈음 뮌헨의 기온은 10도를  전후로 우후죽순 올라오는 뿌리 꽃들처럼 들쑥날쑥했다. 하루는 15도. 다음 날은 6도. 1주일 동안 청재킷과 패딩 사이를 핑퐁 치듯 오갔다. 이런 날에도 좋은 점은 있다.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기 더없이 좋다는 것. 점심 무렵 일하는 곳에서 창으로 잠깐 해가 비칠 때. 일을 마치고 30분 정도 산책을 할 때. 아이 픽업까지 1시간의 여유가 있어 카페 이탈리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실 때 반짝 드는 생각. 글쓰기는 캐내는 것!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건 쉼 없이 계속되는 호미와 삽질.


화요일 아침은 바빴다. 지난 주도 오늘도 남편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남편이 출장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이른 열차 안에서 먹을 간식 봉투를 준비했다. 검은 빵을 길게 썰어 버터를 바른 후 치즈와 살라미를 얹었다. 바나나와 사과와 오렌지를 한 개씩 챙겨 넣었고, 삶고 있던 계란은 열차 시간 때문에 두 번 다 못 먹고 그냥 갔다. 글을 반쯤 써놓고 6시 반에 아이 간식 도시락과 콘플레이크를 준비했고, 7시에 깨워 아침을 먹인 후 학교에 보냈다. 아이가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닌 지도 한 달이 지났다.


다음은 조카. 조카의 아침도 간단하다. 블루베리 요구르트에 사과와 바나나, 오렌지 혹은 딸기에 견과류를 올려준다. 요즘은 집에서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서 같이 마신다. 덕분에 나의 카페 출근은 11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매일 보던 바리스타들과 가끔 모닝커피를 마시러 오던 학교 학부모가 내가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무슨 일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조카는 대학 어학 과정답게 빡빡한 일정을 잘 소화하는 중이다. 쉬는 시간에 먹으라고 매일 샌드위치 두 조각을 싸준다. 조카에겐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생겼고, 나는 일하는 곳에서 점심을 먹기에 간식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조카마저 보내고 서둘러 글쓰기에 올인하지만 늘 시간은 빠듯하다. 린다와의 독일어 공부 때문에 마음이 바빠서. 요즘은 린다가 계속 우리 집으로 다. 오며 가며 1시간은 절약하는 셈인데 글을 완성하자마자 린다의 초인종 소리. 린다와 이방인을 읽는다. 완벽쟁이 린다는 절대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다. 지난주에도 지금까지 배운 분량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어휘는 절반 이상 까먹었는데 그래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자기가 볼 때는 많이 좋아졌다면서.   


지난주에는 뫼르소가 살인을 하기 직전까지 읽었다. 곧 엄청난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날이 밝았다. 여자 친구 마리가 아침 일찍 그를 깨우러 온다. 그들은 일찍 바닷가로 수영을 하러 갈 것이다. 오늘 내가 고 싶은 건 그녀에 대해서다. 지난주 읽은 글의 첫 문단과 두 번째 문단에서 그녀는 벌써 두 번이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Ich habe ihr gesagt, sie wäre schön, und sie hat vor Freude gelacht. 그녀는 기쁨에 넘쳐 웃었다. 내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름답다고.


Marie hüpfte vor Freude und sagte unaufhörlich, wie schön das Wetter wäre. 그녀는 기쁨에 넘쳐 뛰며 몇 번이나 말했다. 날씨가 어쩜 이리 좋냐고.  


Marie und ich sind weit hinausgeschwommen, und wir fühlten uns eins in unseren Bewegungen und in unserer Freude. 마리와 나는 멀리까지 헤엄쳐갔다. 그리고 우리들의 몸짓과 기쁨 속에서 하나가 됨을 느꼈다.   



오늘 마리비탄에 젖을 것이다. 지지난 주에 그녀는 그에게 물었다. 자기와 결혼하고 싶냐고. 그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기 전인 지난주 아침 바닷가 통나무집에서 마리와 그 집 안주인 마송 부인이 함께 내는 웃음소리를 듣고서 그는 결혼을 결심했었다. 그날 아침 뫼로소와 마리는 먼 바다까지 헤엄쳐 갔고, 둘이 한 몸이 된 듯한 기쁨을 느꼈다. 그것이 다였다. 2부 법정에서 그를 궁지로 몰아넣을 완벽한 시나리오 앞에서 마리한 마디 항변도 못한 채 흐느껴 울 것이다.


오늘 그는 살인을 저지를 것이고, 마리의 삶은 물거품처럼 스러질 것이다. 내가 궁금한 건 그다음이다. 그리고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진부한 가사대로,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겠지. 우리의 주인공이 새벽별 아래 위대한 깨달음의 길로 한 발 한 발 나아갈 때. 그녀의 잃어버린 청춘은 어쩌나. 잘 웃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던 마리. 시니컬하고 특이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던 한 남자를 마음을 다해 사랑한 죄 밖에 없던 그녀를. 까뮈여,  뫼르소여! 사랑의 대가가 너무도 크구나, 마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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