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어머니는 다른 유럽인들처럼 일본을 좋아하신다. 한국을 싫어하시냐면 그건 모르겠고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고 관심도 적은 편이다. 지난번 방문 때도 사무라이, 사무라이 하셔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하긴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시면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가까운 나라로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렇지. 독일과 프랑스가 이웃이라고 친하나? 그것만 봐도 답이 나올 법도 한데.
며느리 알바하는 곳은 왜 꼭 오시고 싶으신 건지 신기하다. 독일 사람들은 그것을 관심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참 다른 정서다. 정신없이 바쁠 때라 인사도 못 드릴 텐데. 앉을 데도 없고 음식은 서서 드셔야 하고. 메뉴 역시 딱 한 가지. 한 마디로 새어머니와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그렇게 말씀드리면 섭섭하시겠지? 당연히 오셔도 된다고 해야지. 사정이 이러저러하니 양해하시라고 솔직히 말하고. 그랬더니 괜찮으시단다. 서둘러 바바라에게 SOS를 보냈다.
"힐더가드가 (부모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우리 시댁만의 특징이다!) 뮌헨에 오시는데 우리 가게에 들르고 싶으시대. 그 시간에 나 바쁘잖아. '할로!' 밖에 못 해. 그러니 네가 와서 같이 식사하며 대화라도 나눠 줘. 부탁이야!"
다음날 새어머니는 내가 일하는 곳에 못 오셨다. 일행도 있고 생각보다 일정이 빡빡했다고.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데 마지막 말씀에 더 기겁을 했다. 다음에는 아무 일정 없이 뮌헨에 오셔서 우리 가게만 들르시겠다고. 아이고, 어머니!
지난번에 새어머니를 방문하고 난 뒤 일주일 후에는 시어머니를 방문했다. 경험상 이런 일은 공평해야 뒤탈이 적었다. 어느 쪽에 치우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방문 횟수가 똑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어머니 댁에 갈 때는 바바라도 동행했다. 예전에는 시니컬하신 양아버지 때문에 바바라나 나나 둘 다 불편해했는데 요즘에는 우리 둘 다 느긋해졌다. 바바라는 한 술 더 떠서 얼마나 까부는지(바바라, 미안!) 보는 내가 흐뭇했다. 시어머니도 딸의 변화가 보기 좋으셨는지 최근에 바바라가 바뀌었다며 기뻐하셨다.
왜 안 그렇겠나. 사람이 혼자 오래 살면 말수가 줄어들고, 스킨십도 부족해지기 쉽다.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아이가 고모에게 오죽 달라붙고 치댔어야지. 나 같으면 귀찮고 피곤해서라도 떼어냈을 텐데 다 받아주는 걸 보고 놀랐다. 그런 면에서 남편이나 시누이나 양반들이다.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 독일 온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바바라가 옛날보다 편안하고 좋아졌다. 솔직히 말하자. 전에는 좀 답답했다. 독일 오기 전까지는 나도 내가 이렇게 달라질 줄 몰랐다.
토요일에는 새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남편과 아이를 식탁에 딱 붙들어 매 놓고. 어찌 된 게 내가 아니면 전화 한 통 드릴 생각을 않는다. 하긴 나도 친정 엄마에게 톡 말고는 전화 드릴 줄 모르긴 매한가지다. 친정 엄마는 언니가 옆에 살고 있으니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거고, 시어머니도 양아버지가 계시니까 걱정이 안 된다. 거기다 시어머니 댁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우리 아이보다 한 살 어린 양아버지의 손녀딸이 와서 하룻밤 자고 가기 때문에 더 정신이 없으시다.
그러니 누가 제일 걱정되겠는가. 당연히 혼자 계신 새어머니다. 세 분 중 가장 젊으시지만 70 중반이 다 되셨고 외로움과 쓸쓸함이 판도를 바꿔놓을 수도 있으니까. 부활절 방학 때 오냐고 궁금해하셔서 아이만 며칠 보낼까요 여쭈니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대번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톤이 달라지셨다. 아이가 할머니 질문에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걸 보는 일도 보기 좋았다. 사람은 누구라도 애정을 쏟을 대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서둘러 독일에 온 이유 중 하나다. 그나저나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데 새어머니는 뮌헨에 언제 오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