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어머니를 사로잡은 꽃, 넬케

남편의 새어머니를 방문하다

by 뮌헨의 마리


일요일에도 꽃집이 문을 열지는 생각도 안 했다. 레겐스부르크 역에 도착하니 꽃집도 있었고, 문도 열었고, 내가 원하던 카네이션 넬케 꽃도 있었다!

올해 어머니날에 드린 꽃(왼쪽) 작년 어머니날에 드린 꽃(오른쪽)


일요일엔 레겐스부르크를 다녀왔다. 2주 동안 시아버지 병원을 오가느라 새어머니를 생각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독일에 오니 왜 이렇게 할머니들 복이 터졌는지! 불평할 일은 아니고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이분들이 나를 바쁘게 만드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은 축복 아닌가. 아이들에게 말이다. 어머니날에 만나 뵙지도 못했으니 더 미룰 수도 없어서 일요일 아침에 기차를 탔다.


토요일까지 아버지 병문안을 한 터라 꽃을 준비할 시간은 없었다. 몸살기와 두통도 끝물이라 몸도 마음도 피로했다. 그 이상 나 자신을 혹사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레겐스부르크 역 구내에 꽃집이 있던 것을 기억해 내고는 무조건 출발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요일에도 꽃집이 문을 열지는 생각도 안 했다. 레겐스부르크 역에 도착하니 꽃집도 있었고, 문도 열었고, 내가 원하던 카네이션 넬케 Nelke 꽃도 있었다! 작년 어머니날에도 이 꽃을 선물했는데 무척 기뻐하셨다. 단 빨간 카네이션만 싫어하신단다.


새어머니는 지난번 여행 때 얻은 눈병도, 어머니날 시작한 감기몸살도 다 나으셨다.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새어머니의 친환경 아파트 꼭대기층(그래 봐야 7층!) 발코니에서 점심을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날씨도 맑았고, 바람도 시원했고, 하얀 파라솔까지 펴두시니 쾌적했다. 그날의 점심은 피자! 직접 만드신 건 아니고 냉동 도우에 토핑으로 올리브랑 아티초크랑 참치를 듬뿍 올려 오븐에 돌리면 끝. 그래도 다 같이 둘러앉아 먹으니 맛있었다.



그날 새어머니는 선물로 아이 책과 함께 내 책도 한 권 준비하고 계셨다. 나 역시 새어머니로부터 어머니날 축하를 받았다. 벌써 새어머니께 두 권째 책 선물을 받았다. 우리 새어머니도 많이 변하셨다. 반갑고 즐거운 변화다. 나 역시 새어머니를 만나면 더 이상 긴장하지 않는다. 서로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주 만나야 한다. 제일 큰 공로는 역시 아이겠지? 아이에 대한 애정 덕분에 새어머니의 예민한 신경이 많이 누그러드신 듯.


우리는 그날 레겐스부르크 봄축제인 레겐스부르크 둘트 Regensburg Dult에 갔다. 1년에 두 번 봄가을로 열리는 축제인데 20년 가까이 그런 축제가 있는지도 몰랐다니. 놀이기구도 타고 맥주도 마시는 작은 옥토버 페스트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바이에른 전통 복장인 던들 드레스와 가죽조끼와 가죽 반바지 차림이 많이 보였다. 새어머니와 남편과 아이와 나 넷이 함께 런던 아이 놀이기구 The Star Flyer를 탔다. 워낙 천천히 위아래로 도는 기구라서 나 같은 놀이기구 젬병들도 쉽게 탈 수 있었다.


새어머니도 나처럼 놀이기구는 좋아하지 않으셨다. 남편과 아이가 놀이기구를 타고 노는 동안 둘이서 비어가든 천막 안 그늘에서 시원한 물을 마셨다. 새어머니와 이렇게 별 일 없이 마주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서 예전의 뾰족함은 줄어들고 있었다. 올여름 우리가 한국에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기분도 느껴졌다. 같이 여행 한번 가고 싶다고 하셔서 단박에 유월 핑스턴 방학 때 가면 좋겠다고 촐랑거리기까지 무려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날씨가 점점 흐려졌다. 서둘러 축제장을 빠져나왔다. 다리를 건너자 우리 버스가 막 떠난 후라 걷기로 했다. 레겐스부르크 시내의 좁은 골목길을 걸었던 오후의 시간은 특히 좋았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바람은 차분했고 공기 속에는 물기가 촉촉했다. 곧 비가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걸음이 빠른 남편과 새어머니가 저만치 앞서가고, 아이는 저만큼 뒤처진 사이에서 나는 혼자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담장에 덩굴을 뻗기 시작하는 잎과 줄기도 예뻤고, 창가에 내놓은 화분들도 예뻤다. 골목들, 교회의 첨탑, 먹구름, 그 사이를 가로지르던 무지개. 새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 자주 무지개를 보는 것도 신기했다. 30분을 걸어온 후 작은 공원에서 만난 나무는 압권이었다. 새어머니께 여쭈니 야카란다 혹은 자카란다 Jacaranda라고 불리는 보랏빛 꽃이 피는 나무였다. 원산지는 남아메리카나 중앙아메리카의 열대 및 아열대 지역과 멕시코란다.


집에 도착하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른 저녁은 아이가 좋아하는 구운 소시지 요리. 할머니 댁에 가면 꼭 먹는 요리로 아이가 기대하는 메뉴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음식이란 그렇게 추억이 되는 것이다. 대단한 음식이 아니면 어떤가. 그날 아이는 인터넷에서 직접 찾은 어린이 유머를 몇 개나 할머니께 들려드렸다. 그중 몇 개에 할머니가 즐거워하시는 것을 보고 나중에 아이가 말했다. '할머니랑 시간 보내는 것도 뭐 나쁘지는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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