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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29. 2019

친구가 돌아간 슬픔과 못 오는 슬픔 중 어느 것이 더

새할머니의 비하인드 스토리


아이가 말했다. '할머니는 친구가 돌아간 슬픔과 우리한테 못 오는 슬픔이 겹쳤네! 친구가 돌아간 슬픔과 우리한테 못 오는 슬픔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뮌헨의 빅투알리엔 마켓 꽃집의 꽃들


일요일 저녁 남편의 새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시어머니와 아버지 병문안에 정신을 쏟다 보니 새어머니를 자꾸 잊게 된다. 그날은 시어머니의 재활 클리닉을 방문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집에 오니 저녁 7시. 남편은 사무실에 들렀다 오겠다고 했다. 아이가 졸라서 바바라가 우리 집까지 따라왔다. 다음 날엔 학교도 가야 하고, 고모도 피곤다고 타일렀지만 들은 척도 않았다. 둘을 집 근처 베트남 식당에 보내 저녁을 먹고 오게 했다. 일요일 저녁에도 문을 여는 동네 베트남 식당이 놀랍고 고맙다.


새어머니께는 전화를 드리기  미리 왓츠앱으로 아버지와 시어머니 재활 클리닉 방문 건을 알려드렸다. 다가오는 목요일이 공휴일이라 시어머니를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보내드릴 거라는 일정까지. 독일에서는 이런 걸 재혼하신 다른 쪽 부모에게 숨길 필요가 없어서 좋다. 고모와 장난치며 할머니 질문에는 성의 없는 답변만 하던 아이가 작별 인사를   중차대한 일이라도 떠올린 사람처럼 폭탄 멘트를 날렸다. '할머니! 내가 금방 다시 갈게요!' 고모가 두 손을 내저으며  된다는 싸인은 무시했다. 할머니가 반색하 '언제?'라고 물으시자 당당히 '일요일'라고 대답했다. 아이의 기특한 행동부응을 해줘야 마땅할 터. 마무리 멘트는 내 몫이었다. '클레멘스 안 바쁘면 일요일 찾아뵐게요!'


전화를 끊고 바바라에게 말해주었다. 우리와 꼭 동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린 여름 한 달을 한국에 가야 하니까 미리 시간 될 때마다 찾아뵙는 거라고. 쓸데없는 토까지 달았지만 바바라가 이해할 거라 기대하 않았다. 독일 사람들에겐 신의 인생모든 삶의 척도 중에서도 최우선 아닌가. 그것도 나쁘지 않다. 선택의 기로에만 서면 배려인지 희생인지 쉽게 양보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나 같은 사람이 독일에서 배워야 할 덕목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역시도 그랬다. 내 인생을 살고 싶어서 뮌헨으로 왔다. 시부모님 생각은 없었다. 평생 건강하실 줄 알았다. 시부모님이 수술과  입원을 하시고야 알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인생의 일부라는 것.



남편이 일요일에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시부모님 병문안으로 5월 동안 바빠도 너무 바빴다. 새어머니께는 일요일에 뮌헨으로 오시는 게 어떠냐고 여쭈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아쿠아리움과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원. 두 가지 옵션을 내걸고서. 동물원도 좋겠다며 흔쾌히 오겠다 하신 게 그제의 일. 어제 갑자기 어머니의 톡을 받았다. 여성 모임인 이너휠 클럽의 가까운 친구가 돌아가셨단다. 장례 때문에 못 오실 것 같다고. 조의를 표하고 6월 중순의 핑스턴 방학을 기약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따로 톡을 보내셨다. 지난번 방문 때 봄축제에 가서 놀이기구를 탄 게 재미있었던지 아이가 그림까지 그려서 보내드린 카드를 어제 받으신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말했단다. 일요일 뮌헨에 못 가서 너무 서운하다고. 할머니와 톡을 마친 아이가 말했다. '할머니는 친구가 돌아간 슬픔과 리한터 못 오는 슬픔이 겹쳤네! 친구가 돌아간 슬픔과 우리한테 못 오는 슬픔 중 어느 것이 더 클까?'그러게 말이다. 슬픔은 비교 불가다. 아이로부터 할머니께 들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 들었을 때처럼.


지난 부활절 방학 때 아이 혼자 할머니 댁에서 지낼 때였다. 봄꽃을 사서 베란다에 심기로 하고 할머니와 꽃시장에 들렀. 꽃시장에서 치트로네 바움(레몬  트리)를 보고 할머니가 눈시울을 적셨다. 젊은 날 할머니가 혼자 여행을 떠나실 때였. 할머 집에 있던 레몬 트리를 어떤 사람이 들고 가서 돌봐주기로 했. 여행에서 돌아오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평소 건강한 사람이었기에 믿기 어려웠. 장례식에  할머니가 그의 부모님께 여쭈었다. 관 속에 레몬 트리도 같이 넣어주시면 안 되나요? 이야기를 마친 할머니가 우셨다. 할머니가 사랑하던 사람이었을까. 그 비밀 이야기 하나로 아이는 할머니의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독일은 핑스턴로제. 작약의 시간이다. 프랑스 이름은 피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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