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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l 26. 2019

사랑은 돌고 도는 것

돈과 함께. 아마 신과도 함께.


사랑이 특히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이 사람을 치유한다. 받는 사랑 뿐만 아니라.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그건 나도 해봐서 안다. 남을 사랑하는 행위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남편의 새어머니이신 나의 또 한 분의 시어머니는 수영을 안 하신다. 독일 사람 치고는 특이한 케이스신데 젊어서는 당연히 하셨겠지만 나이가 드신 이후부터 수영장에  가시는 것 같다. 대신 이른 아침에 노르딕 워킹과 골프를 다. 2년 전까지는 스키도 타셨는데 많이 즐기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건 스포츠 관람. 특히 F1 레이스와 축구 경기를 좋아하신다. 알고 보면 열정이 넘치시는 분인데 젊을 때 원 없이 풀지를 못해서 속 깊은 곳에 응어리가 남은 아닌가 싶다.


반대로 남편의 친어머니이신 시어머니는 팔순이 되신 지금까지 집 근처 호수에서 마다 수영을 하신다. 30년 동안 새벽의 호반에서 냉탕 수영을 하셨으건강은 당연히 좋으시겠. 젊어서는 테니스와 등산과 스키즐기셨는데. 5월 초에 받으고관절 수술 경과가 좋아서 다음 주부터 수영도  수 있다고 기뻐하시는 중이다. 어머니는 잘 웃으신다. 52킬로의 단아한 체구로 생의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신다. 함께 있으면 절로 부지런해질 것 같은 타입.


어제저녁에는 새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2주 동안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신 지 하루가 지났다. 남편과 같이 하려고 기다렸으나 남편의 귀가가 늦어지는 바람에 아이와 둘이서 용기를 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여행은 어떠셨는지, 돌아와서 피곤하지는 않으셨는지 질문과 대답이 사이좋게 오갔다. 아이가 보내드린 생일 축하 엽서를 받았다며 기뻐하셨다. 아이가 '주말에 가서 할머니랑 자고 올게요!' 니 74세 할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아가씨처럼 들떴다. 오늘 아침엔 '할머니께서 오시면 머무실 공간'이라며 아이 방에 침대 두 개를 나란히 놓은 사진을 보내 드렸더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사랑도 돌고 돈다. 돈만 돌고 도는 게 아니라. 내가 알지. 우리 엄마를 봤으니까. 까탈스러운 딸 둘 성미 맞추느라 노심초사 눈치만 보시다가 내가 아이를 낳으러 한국에 들어가서 엄마 집에서 살 때 아기가 태어나자 만 3년을 애지중지 키워주셨다.  엄마는 칠순에 할머니가 되셨는데 '남자 하고 연애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것!'이라며 넘치는 외손녀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하셨다. 사정이 있어 어린 시절 언니와 나를 못 키우셨는데 갓난아기인 내 딸을 키우마음의 우물을 메우신 듯했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사랑이 특히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이 사람을 치유한다. 받는 사랑 뿐만 아니라.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그건 나도 해봐서 안다. 남을 사랑하는 행위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아이와 <새할머니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시어머니와 양아버지는 지금처럼 주 1회 꾸준히 방문하면 괜찮을 듯싶다. 두 분과의 신뢰는 만리장성만 튼튼하게 쌓았으니까. 목표는 남편과 시누이까지 북적대며 방문하는 . 문제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만 3년, 늘 혼자 계시는 새어머니다. 인생이 뭐길래 인간이 그토록 외로워야 한단 말인가. 여기엔 진작 새어머니가 계시는 레겐스부르크로 가지 못한 죄송함도 포함된다.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는 것. 9월부터 마사지 가게에서 주중 2회, 주말 1회 일하기로 했는데 이 찬스를 쓰기로 했다. 매주 뮌헨으로 나오시게 하는 거다. 일명 새할머니 바쁘게 만들기.


시아버지의 반대로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는 새어머니는 평생  한 번도 아이를 픽업하러 학교에 가 보신 적이 없었 것이다. 시아버지와 결혼하셨을 때 막내였던 남편도 이미 만 열두 살이 었으니까. 그 나이면 아이가 아닌 청소년. 우리 아이는 만 9세라 아직 괜찮다. 이삼 년 정도는 할머니와 우정을 나누고, 엄마 아빠는 모르는 비밀 이야기를 주고받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인생의 마지막 카드가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시어머니와 양아버지로부터 받은 슈탄베르크 호수 만큼 넘치 사랑은 레겐스부르크의 새어머니께로 가닿는다. 사랑은 이렇게 돌고 도는 것. 돈과 함께. 아마 신과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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