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Apr 17. 2019

화요일의 수다

린다와의 대화? 린다와의 수다!


린다와 2주 동안 공부 대신 수다를 떨었다. 린다가 수다를? 그럴 리가 있나. 내가 그랬다는 말이다.



린다와 2주 동안 공부 대신 수다를 떨었다. 린다가 수다를? 그럴 리가 있나. 내가 그랬다는 말이다. 린다는 수다 중에도 선생의 본분을 잃지 않았다.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 독일어 문장을 고쳐주었으니까. 한동안 수다라는 걸 떨지 못했다. 말도 글도 자꾸 해야 느는데. 오죽하면 알바하는 곳에서 매일 만나는 이들은 내가 과묵한 줄 안다. 거기서야 크게 할 얘기가 없어서 그런 거고. 20대나 30대들과 관심사가 같다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철이 덜 들었거나 주책이거나. 좋게 말하면 오픈 마인드.


지난주엔 뭐 한다고 말이 길어졌을까. 시댁 얘기가 나와서 독일 사람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또 일본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 그러다 역사 얘기까지 나왔을 것이다. 린다의 과외 학생 중에 일본인 학생이 있다는 것은 나중에 생각났다. 린다에게 톡을 보내서 내가 했던 말 중에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줄 만한 건 잊으라 했더니 장문의 답이 왔다. 이런 대화를 무척 좋아한다고. 덕분에 한국과 일본과 독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어제는 종일 새어머니 댁에서 하루 일찍 집으로 오고 싶어 하던 아이의 풀 죽은 목소리 때문에 정신이 산만했다. 아이가 너무 힘들지 않아야 하는데. 앞으로 독일에서 새할머니와 보낼 긴 시간생각해서라도. 알바하는 곳에서는 미안하게도 접시를 두 개나 깨뜨렸다. 엄마가 문제구나. 알바를 마치고 빅투알리엔 마켓까지 걸었고, 카페에는 들르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와 책장 정리를 했다. 옛날 아이 방 벽면을 따라 길게 책장을 놓았, 맞은편에는 우리 방에 어정쩡하게 옮겨둔 소파를 두어야지. 봄날의  읽기 전용으로. 혹은 공부는 1시간 만에 끝내고 린다와의 수다 전용으로.


오늘 린다는 새로운 소식을 들고 왔다. 케이크 전문점을 그만 두기로 했단다. 근무 시간 후 매장과 특히 화장실 청소가 그렇게 싫더라고. 청소는 직원들이 안 하게 해달라고 건의했는데, 주인이 알겠다고 해놓고 또 시켰던 모양이다. 자기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젤 싫단다. 그래서? 그만두겠다고 말했단다. 대단하지 않은가? 자기가 잘못한 거냐고 물어서 솔직히 대답했다. 다른 사람은 그러고 싶어도 너처럼 쉽게 못 그만둔다고. 그녀는 몸도 마음도 가벼운 싱글 아닌가. 그럼 다시 백수네? 놀렸더니 단 한 번도 백수로 살아보지 못했다고. 올해부터는 자기가 쓴 책으로 꼭 돈도 벌겠단다. 린다 만세!



지난주에는 린다에게 10년 만에 만난 옛날 남자 친구 이야기도 들었다. 저녁의 사우나 휴게실에서 그것도 우연히. 남자 친구도 아직 싱글인 채로. (그날 린다가 말하길 자기한번 결혼을 했단.) 아이는 있었는지, 결혼 생활은 어땠는지, 기타 자세한 사정은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사우나에서 만난  남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했었다는 말만 들었. 그가 잠시 사우나실에 다녀오는 사이 집으로 내뺐다고.  그랬어? 내 질문에는 어깨만 으쓱했다. 내가 아는  린다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와 마주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와는 한두 달만 늦게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 역시 린다가 케이크 전문점에서 오래 일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린다에게는 린다만의 길이 있기에. 그녀는 그 길을 가야 한다. 글 쓰는 길 말이다. 그럼 나는? 그날 린다는 나 역시 아무 데나 가서 일하는 별로라고 말했다. 그럼 뭘까. 나만의 길은. 오늘 린다가 내게 던져준 숙제다. <이방인> 2부 한 챕터 읽기와 함께. 린다는 요즘 나를 만날 때마다 스킨십이 부족하다며 볼 키스 말고 아메리칸 식 포옹을 다. 오늘은 작별 인사를 번이나 다. 돌아서며 린다가 말했다. 가정이 없는 자신에게 따뜻한 우리 집 부엌에 앉아 마시는 커피는  최고라고. 오늘 린다는 내가 준비한 검은 빵 두 조각에 얹은 치즈까지 맛있게 먹었다.


새벽에 슈투트가르트로 출장을 갔던 남편은 저녁 7시에 돌아왔다. 남편보 먼저 새어머니의 톡이 도착했다. 어제 성공하신 모양이었다. 아이와 영화관에도 가셨단다. 너무 재미있었다며 행간에 하트 이모티콘들이 촘촘하게 박혔다. 어머니도 인정받고 싶으신 거다. 할머니로서의 자격을 말이다. 그게 뭐 어렵다고. '참 잘하셨어요, 어머니!!!' 칭찬 듬뿍. 저녁 통화 때는 아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할머니랑 쇼핑도 가고 사주신 책도 벌써 반 넘게 읽었단다. 그리고 속삭이는 목소리. '나 밤에 한 번도 안 울었어!' 금세 커지는 목소리. '빨리 전화 끊어. 지금 내가 보고 싶은 거 나온단 말이야!' 엄마는 궁금했다. 저녁 8시 반에 독일 TV에 나오는 게 대체 뭐길래?


작가의 이전글 어젯밤에 일어난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