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Apr 22. 2019

해마다 꽃 색깔이 바뀐다고 했다

형부의 외숙모님 탄테 헬가


탄테 헬가가 우리 동네에 사신 지는 오래되셨다. 탄테 헬가는 이 동네를 사랑한다고 하셨다. 나도 그랬다.
우리 집 앞 이태리 레스토랑 <라 소피아>


탄테 헬가를 만난 날은 부활절 휴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 세 시였다. 우리 집 앞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이름도 예쁜 이 레스토랑 <라 소피아>를 사이에 두고 양쪽 길에 다. 이름하여 이웃사촌. 그분은 형부의 독일 외숙모님이다. 형부가 이태리 사람이니  집안 국제결혼은 제법 역사가  셈. 탄테 Tante독일어여자 친척을 아우르는 인데, 글에서는 아이가 부르는 호칭으로 쓰고 있다.


지난 1년 간 탄테 헬가와 나는 서로의 집을 한두 번씩 방문했다. 에서 만나는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이었다. 부활절 금요일에 독일 가정에서는 전통적으로 생선을 먹는다는 것도 그날 알았다. 탄테 헬가는 점심으로 연어를 드셨단다. 내가 탄테 헬가를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다. 나는 할머니들로부터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도 탄테 헬가의 질문에 스스럼없이 대답하며 스티커북으로 잘 놀았다. 평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부끄러워하는데. 엄마편안해서 그런 걸까. 아이를 키워보지도 않으신 분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만나자마자 핸드백에서 황금색 토끼 초콜릿을 하나 꺼내 아이 손에 쥐어주셨는데 아이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신공을 보여주었. 그 큰 토끼를!


아이의 책상에 나란히 놓인 부활절 바구니 두 개. 친할머니(왼쪽) 탄테 헬가(오른쪽)


탄테 가와 나는 카푸치노를 마셨다. 탄테 헬가는 카푸치노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나도 그랬. 봄햇살은 눈부셨고, 선선한 바람이 레스토 앞 일곱 그루 나무들의 연둣빛 들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때마다 테이블 위의 투명한 코카콜라 병에 꽂혀 있던 흰색, 빨간색, 노란색, 오렌지색튤립 꽃송이들이 미세한 떨림으로 응답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게 사람 마음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고개를 들자 탄테 헬가의 아파트가 있는 우반역으로 가는 길의 하얀 꽃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여쭈었다. 왜 콜룸부스 슈트라세에는 흰 꽃들 밖에 없나요? 그게 아니라고 하셨다. 믿기 힘든 말이라는 건 아는데 해마다 다른 빛깔의 꽃을 피운다고. 격년으로 핑크와 흰꽃이 번갈아 핀단다. 작년 봄에는 그럼 핑크 꽃이 피었단 말인가. 잘 모르겠다. 내년 봄에 확인하는 수밖에.


탄테 헬가가 우리 동네에 사신 지는 오래되셨다. 탄테 헬가는 이 동네를 사랑한다고 하셨다. 나도 그랬다. 탄테 헬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태리 레스토랑 <라 소피아>가 들어선 지는 5년쯤 되었단다. 그 전에는 슈퍼였다가 약국인 아포테케로 업종을 변경한 적도 있단다. 그 소리에 아이도 나도 놀랐다. 이렇게 넓은 자리에? 탄테 헬가는 <라 소피아>에는 몇 번 오셨지만 실내에는 한 번도 안 들어오셨다고. 그럼 다음에는 안으로 들어가요! 내 말에 탄테 헬가가 웃으셨다. 봄날의 오후, 그리고 함께 나눈 커피 한 잔.


흰 꽃들(왼쪽) <라 소피아> 앞 나무들 전경(오른쪽)








작가의 이전글 화요일의 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