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May 01. 2019

뮌헨의 라일락꽃

독일말로는 플리다 Flieder


할머니는 용감하셨다. 지난 금요일 자전거 투어를 할 때 할머니가 꺾어 주신 것은 라일락 꽃. 독일말로는 플리다 Flieder. 이름도 참 예쁘다.



율리아나 할머니는 올해 만으로 67세. 헝가리 출신으로 뮌헨 생활만 47년째시다. 뮌헨에서 직장 생활도 43년쯤 셨다고. 할머니의 외동딸인 율리아나 엄마가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율리아나 남매를 돌보신다. 얼마나 바지런하신지. 우리 시어머니만 그러신 줄 알았더니 두 분이 막상막하시다. 할머니의 자가용은 자전거. 한겨울 빼고는 자전거로 두 손주들을 픽업하시고 이자르 강가와 시내를 종횡무진 누비신다.


할머니는 용감하셨다. 지난 금요일 자전거 투어를 할 때 할머니가 꺾어 주신 것은 라일락 꽃. 독일말로는 플리다 Flieder. 이름도 참 예쁘다. 내가 걱정이 되어서 꺾어도 되냐니까 숲이나 들판처럼 임자가 없는 꽃들은 괜찮단다. 얼마나 당당하게 꺾으시는지 할머니가 꺾으시기 좋게 가지만 밑으로 내려 잡고 서 있기가 죄송할 지경이었다. 할머니가 꺾은 꽃들은 할머니의 자전거 뒷좌석에 다가 사이좋게 할머니 댁과 우리 집을 장식했다. 오는 길에 구색을 맞춘다고 흰 라일락 몇 송이도 추가되었다.


할머니를 따라 이자르 강가를 달리다가 숲 속 놀이터에 들르기도 했다. 남쪽 동물원 근처까지 가서 로스터리 카페에도 들렀다. 신선한 원두 콩을 직접 갈아주는 곳인데 얼마 전에 오픈했단다. 할머니는 바로 전날 거기서 커피를 사 오셨는데 만족도가 크셨나 보다. 나도 며칠  전 카페 겸 토털숍 치보에서 커피 250g을 5유로 안 되게 주고 사 왔는데 맛이 별로여서 고민하던 차였다. 같은 250g 커피가 치보보다 1유로 비쌌으나 신선도가 높았다. 그날 할머니가 나한테카푸치노를 아이들에겐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중 하나는 내가 사겠다고 해도 안 들으셨다.



내가 독일에서 라일락을 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작년에는 뭘 봤는지. 알바를 마치고 걸어오는 길에도 건물들 안쪽 정원과 공원 안에 흰 라일락 꽃나무들이 보였다. 알고 보니 독일에 라일락 꽃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마치 처음 독일에 왔을 때 사방에 천지로 피어나는 개나리를 보고 반갑던 경험과도 같았다. 개나리를 못 알아볼 리는 없으니 더 자주 눈에 띄었겠지. 올봄의 라일락도 그랬다. 크고 작은 보랏빛, 핑크빛, 흰 꽃나무들이 모두 라일락이었구나! 알고 나니 세상의 모든 라일락이 내 으로 걸어 들어오는 느낌.


내가 라일락을 만난 건 율리아나 할머니 덕분. 할머니는 가만히 앉아있는 걸 안 좋아하신다. 친한 할머니들 대부분이 카페에서 차나 케이크를 먹으며 담소하는 걸 즐기신단다. 당연하지. 나는 할머니보다 한참 젊은데도 그게 좋은데. 답답해서 혼자서라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신다고. 올봄에 나는 할머니를 따라서 아이들과 자전거로 영국 정원과 슈바빙까지 진군하기로 했다. 어쩐지 할머니와 함께라면 하나도 겁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할머니 댁에서 저녁까지 얻어먹고 저녁 7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할머니는 당신의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돈이 많은 헝가리 할머니로 뮌헨에 살고 계신 분이란다. 아파트를 몇 채나 가졌으면서 평소에는 빈 병을 주우러 다니신다고. 독일 노인들 중에는 플라스틱 물병과 빈 맥주병을 줍는 분들이 많다. 슈퍼에서 빈 병을 회수하고 돈을 돌려받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그 친구의 인색함이 너무 싫어서 안 만나신다고. 율리아나 파파 지미가 그러더란다. 빈 병은 집으로 가져오지 마시고 쓰레기통에 넣으시라고. 꼭 필요한 사람이 가져갈 수 있도록. 내가 율리아나 가족을 좋아하는 이유.


나의 자전거 타고 사진 찍기 신공(아래)! 오른손엔 자전거 핸들, 왼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달리며 찍었다. 할머니가 선두. 율리아나와 알리시아. 마지막은 율리아나 남동생 제이슨.
작가의 이전글 해마다 꽃 색깔이 바뀐다고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