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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02. 2019

크리스탈이여 안녕!

떠났다고 끝은 아니야


크리스탈은 어느 학교로 간 걸까. 새 학교에서 잘 적응할까. 4학년 졸업할 때까지 1년만 더 같이 다녔더라면 좋았을 텐데.



비로소 '크리스탈'내 식대로 부르기로 하자. 아이의 주장대로 '크리스털'이라 부르지 않겠다는 뜻이다. 오늘이 내가 그 아이에 대해 쓰는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르니까. 리스탈이 떠났다. 부활절 방학 전에. 지난주 금요일까지 누구도 몰랐다. 당연하지. 선생님들이 당일까지 함구하고 계셨으니까.


크리스탈은 우리 아이 반 흑인 소녀였다. 아이는 독일 초등 3학년. 작년 9월 새 학기 때 반에는 총 25명이 있었는데 2월 중순 1학기 성적표를 받은 후 1명이 한 학년 아래로 내려갔다. 낙제생이 생긴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하긴 작년 새 학기에 4학년에 올라가지 못한  아이가 우리 반으로 새로왔더라는 말을 아이에게 들은 적은 있다. 크리스탈까지 떠난 우리 반은 현재 23명.


크리스탈은 엄마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흑인 삼촌 숙모와 같이 살았다. 체격이 건장하고 성격이 밝던 삼촌과 반대로 숙모는 몸집이 작고 유순한 성격에 말수가 적었다. 반 아이들 중 그나마 서로 집까지 방문하며 교류했던 건 우리 아이밖에 없었다. 크리스탈의 생일 파티에 초대된 것도 반에서 우리 아이뿐이었으니까. 나머지 대여섯 명은 동네 친구들이었다.



삼촌과 살던 크리스탈이 어느 시설로 옮겨졌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지 어느덧 넉 달 가까이 지났다. 직후에 크리스탈 삼촌을 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만난 것도 오래전 얘기다. 이후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한 번쯤 왓츠앱으로 안부를 물어볼까 몇 번이나 생각했으나 용기를 내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주변의 침묵이 그의 소외감과 고립감을 키울 것 같기는 했으나 섣부른 위로를 던질 수도 없어서였다.


크리스탈 삼촌 숙모가 받았을 충격과 심적 고통을 어떻게 내가 짐작이나 하겠는가(내가 모르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 그러지 않았기를!). 크리스탈 삼촌의 말을 빌리자면 발단은 크리스탈 삼촌이 결혼하기 전 갓난아기였던 크리스탈을 돌보아주던 독일 대모님이었던 것 같았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크리스탈과 함께 지냈던 그분이 크리스탈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는 것. 그게 어떤 말이었는지는 그도 몰랐다. 좋은 얘기는 아니었을 거라는 것만 확실했다.


나도 잘 안다. 무섭던 그 여자분을. 내가 크리스탈에게 주목하게 된 것도 그 여자분 때문이었다. 애를 어찌나 혹독하게 대하시는지 옆에서 보는 내 마음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분 앞에서 불안하던 크리스탈의 크고 검은 눈동자도 생생하다. 아이 때부터 봐주셨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제 와서 따져보면 뭘 하나. 크리스탈은 어느 학교로 간 걸까. 새 학교에서 잘 적응할까. 4학년 졸업할 때까지 1년만 더 같이 다녔더라면 좋았을 텐데.



다행히 아이는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늘 가방에 넣고 다녔다. 크리스탈이 친구들에게 화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러면 나 다른 학교로 가버릴 거야'라고 했던 말이 빈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도 어쩐지 그 말이 마음에 걸려서 언젠가 아이에게 크리스탈에게 주는 엽서를 하나 써도록 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일. 만약에 크리스탈이 훌쩍 떠나기라도 하면 얼마나 마음이 안 좋을 것인가. 크리스탈도 우리도. 큰 선물은 아니어도 아이들 마음이 담긴 작은 거라면 좋을 것 같았다.


아이는 선물로 받은 키티 파일 중 하나에 이렇게 쓴 엽서를 넣고 아주 작은 미니북도 하나 끼웠다. '크리스털! 너랑 지내서 즐거웠어! 다른 학교에 가더라도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즐겁게 지내길 바랄게!'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별 말은 아니어도 3년 반을 보낸 학교를 떠나며 그런 작별의 말 한마디도 못 듣는다면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나중에는 후회했다. 다른 선물을 하나 더 준비할 걸. 잘 때 안고 자도록  따뜻하고 포근한 어떤 거라도. 열 살은 아직 어려도 너무 어리지 않나.


위로라면 크리스탈이 우리와 같은 뮌헨에 있을 거라는 희망이다. 언젠가 만날 날도 있을 것이다. 꼭 한번 따뜻하게 안아줘야지. 그 애는 안아주는 걸 좋아했는데. 갈지도 모른다는 걸 듣고도 한번 안아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또 하나 다행인 건 우리 반 대표 엄마가 크리스탈 연락처를 알아내어서 어떤 식으로든 꼭 아이들이 작별 인사를 하도록 하겠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참 고마웠다. 안녕, 크리스탈.. 떠났다고 끝은 아니야. 우리가 너를 기억하는 한. 네가 자주 들렀던 마리엔 플라츠 후겐두벨 서점에서 꼭 다시 만나자!


뮌헨의 가구점 Sit&Sleep: Furniture Store in München, 주소: Oberanger 34, 80331 Mün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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