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아이와 마리엔 플라츠의 후겐두벨 서점 소파에 앉아 이 글을 쓴다. 뮌헨은 밤새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 빗소리에 잠을 설쳤다. 뮌헨, 내 삶의 균형 감각. 곧 돌아올게, 그때까지 안녕!
뮌헨은 지금 월요일 오후 4시!(2019.7.29)
주말에 아이는 양쪽 할머니 댁에서 각각 1박을 하고 일요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금요일 밤은 친할머니 댁에서, 토요일 밤은 새 할머니 댁에서. 이틀 밤을 엄마 없이 보낸 탓인지, 큰 아파트에 새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는 게 적막했던지 밤늦게 전화를 했다. 일요일에 일찍 데리러 와달라는 주문이었다. 원래는 새 할머니가 아이와 뮌헨에 오셔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기로 했는데 오시지 않았다. 장기 여행의 노독이 생각보다 크신가 보았다. 새어머니께 인사도 못 드리고 한국에 다녀오게 생겼다.
아이와 나는 금요일 종강을 하자마자 친할머니 댁으로 달려갔다. 시부모님 댁에서 점심을 먹었고, 식사 후 두 분이 쉬실 때는 아이와 거실이 내려다 보이는 옥탑방 앞 작은 공간에 앉거나 엎드려 책도 읽고 글도 썼다. 지난주는 유럽 전역과 독일에 다시 폭염이 몰아쳐 40도를 넘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이는 성적표를 잘 받아서 할아버지 할머니께도 용돈을 두둑이 받았다. 특히 수학을 잘한다고 기뻐하셨다. 형네 큰손녀가 수학 때문에 늘 고전했다는 말씀도 덧붙이시면서. 저녁에는 남편과 시누이가 와서 다 같이 호수에서 수영도 했다. 서운한 마음이야 호수만 하실 텐데도 시부모님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 가지고 오라고 진심으로 축복해 주셨다.
토요일엔 모처럼 휴식이었다. 남편이 시어머니 댁에 아이를 데리러 갔고, 다시 새어머니 댁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간만에 토요일에도 글을 올릴 수 있었다. 오후에는 쇼핑을 갔다. 선물도 사고 온 가족 옷도 샀는데 결론은 3시간 쇼핑이 글쓰기 세 시간보다 힘들었다는 것. 남편 티셔츠 두 개, 내 티셔츠 두 개, 아이 티셔츠는 조금 많이 골랐다. 그 사이 어찌나 컸는지 집에 맞는 옷이 없어서였다. 이상하게도 남편과 아이 옷 고르기는 쉬운데 내 옷 고르기가 어려웠다. 입어 보기도 하는 데도 그랬다. 여자들이 자매나 친구와 쇼핑을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요일엔 보디마사지 자격증 코스 이틀째를 들었다. 강사인 마리야는 여전히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쳤고, 첫 번째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카탸와 슈테판을 포함 신청자는 총 6명이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62세의 우쉬 Uschi였다. 여자분인데 만 59세 때 40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지난 3년 동안 집에서 가족, 친구, 이웃을 대상으로 마사지를 해왔단다. 돈보다는 사무직 일에 신물이 나서 취미 삼아 몸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9월에 내가 일할 곳에 한번 오겠다고 했다. 그녀의 타이식 마사지는 박력이 넘쳐 잠들기가 좀 힘들었지만 뭐 사람마다 자기 스타일이란 게 있으니까.
지난번에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천천히 하라는 충고를 들었는데 그 부분은 많이 좋아졌다고 칭찬을 받았다. 이번에 지적을 받은 것은 강하게 누를 때는 반드시 고객의 호흡과 표정에 변화가 있는지를 살피라는 주문이었다. 아주 유효한 충고라 가슴에 새기기로 했다. 내가 한국에서 오자마자 마사지샵 스파에서 일하기로 했다고 하자 누구보다 기뻐해 준 사람도 강사 마리야였다. 아주 좋은 선택이라며 잘할 수 있다고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그녀처럼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한 나만의 방식을 갖게 되기를. 목표는 간단명료하다. 고객을 잠들게 하라! 약 없이도..
아이의 방학 첫날인 월요일은 이른 아침부터 조카와 포치 슈트라세 Pocchistraße의 외국인청에 들러 조카의 취업 비자 신청을 완료했다. 발급까지 6주가 걸린단다. 그 사이 쓸 3개월 임시 비자도 받았다. 취업 비자 신청 수수료가 무려 100유로라는 건 이번에 알았다. 아이가 방학일 뿐인데 세상이 방학에 들어간 듯한 착각과, 숙제였던 조카의 비자 문제가 해결되어 마음을 놓은 탓인지 글쓰기를 깜빡하고 있었다. 오후에 아이와 마리엔 플라츠의 후겐두벨 서점 소파에 앉아 이 글을 쓴다. 뮌헨은 밤새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 빗소리에 잠을 설쳤다. 뮌헨, 내 삶의 균형 감각. 곧 돌아올게, 그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