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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집 찾기의 어려움 2

by 뮌헨의 마리


독일에서 외국인으로 특히 유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는 경우가 많을 테니 말이다. 언어의 문제도 크다. 어디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할지 정보도 얻기 힘들고.




오늘은 휴무 둘째 날이었다. 새벽 6시에 남편은 출장을 갔다. 아침 7시 30분 아이를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주었다. 학교는 지하철로 1코스. 지하철 역에서 학교까지는 1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곧잘 혼자서 지하철로 다니고 있다. 그 시간은 뮌헨의 러시아워였다. 출근도 등교도 8시이기 때문. 아이는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안으로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양해를 구하고 아이의 등을 지하철 문 안으로 살짝 밀었다. 사람들이 미소와 함께 작은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 빵을 샀다. 슈퍼에서는 햄과 치즈, 계란과 파스타 면을 샀다. 집에 오니 아침 8시 반. 빨래를 한번 돌리고, 닭다리 4개를 압력솥에 넣고, 약한 불에서 오래 끓였다. 어제 정리한 아이의 옷 가방 세 개는 호텔에서 일하는 동료 미나에게 줄 생각이다. 모나코에 사는 남동생 집에 여자 조카가 있는데 우리 아이보다 한 살 어리단다. 줄곳이 있어 다행이다. 지난번에는 베트남 친구에게 주었다. 모나코까지 가는 버스가 있단다. 버스를 배에 싣는 건가? 그건 모르겠다. 킬로당 몇 유로면 물건을 보낼 수 있단다. 저 부지런함이라니!


방마다 침대를 정돈하고, 이불보를 갈고, 두 번째 빨래를 돌리고, 밀린 설거지까지 끝냈다. 갓 지은 밥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나자 오전 11시 30분. 뜨거운 믹스 커피를 한 잔 타서 글쓰기 방으로 왔다. 내게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남짓. 아이를 픽업하기 전에 미나를 만나 옷가지도 전해주고 커피도 한 잔 해야 한다. 어제 미나가 전화를 해서 약속을 정했다. 미나와는 카페 이탈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음에 이직을 하더라도 꼭 한 팀으로 같이 가잔다. 부담 백 배다. 종업원들 대다수가 이태리 사람인 카페 이탈리를 오늘 미나에게 보여주기로 작정한 이유다. 미나는 이태리어에 능통하니까.





지난주에는 주말에 새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초대한 일을 포함, 숙제였던 조카 친구 일까지 한꺼번에 처리했다. 그리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피곤했다. 10월 초에 조카로부터 톡이 왔다. 같이 살고 있는 한국 여학생이 전 집주인에게 두 달치 월세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방 하나에 월세는 650유로였다. 그녀의 총 보증금은 1300유로. 독일에서는 3개월 전에 반드시 집주인에게 이사 간다는 것을 통보해야 한다. 이때는 이메일이나 문자나 편지 등 문서로 남겨두는 게 좋다. 8.20일 자로 집을 나왔는데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서 10월 초에야 보증금 1300 중 350을 돌려받았다. 나머지는? 책상과 매트리스 바닥에 흠이 생겼다는 트집을 잡아 300을 떼고, 9월 치 월세 650도 뗐다. 이유는? 이사 간 집으로 새 주소 등록이 늦었으니 자기 집에 한 달 동안 산 것이나 마찬가지라나.


남편이 발 벗고 나서 줄 차례였다. 전화 한 통화면 될 줄 알았는데 독일 사람답게 형식을 갖춘 긴 편지를 쓰더니 조카의 친구에게 서명을 하고 등기 증명으로 보내라 했다. 조카 친구의 집주인은 동유럽 여성이었다.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보증금을 떼먹은 일이 있었다는 건 나중에 들었다. 그때도 한국 여학생이었는데 그 여학생의 남자 친구가 독일인이었다고. 남자 친구 아버지의 전화 한 통화로 바로 해결이 된 사례였다. 이런! 빽 없고 인맥 없는 외국인 여학생들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사기를 치다니. 이런 경우는 보도 듣도 못했다. 흠이나 파손을 이유로 보증금에서 돈을 떼는 경우는 흔하지만. 그러니 처음 이사갈 때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두는 게 낫다. 남편이 쓴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당신은 합법적인 이유 없이 보증금에서 9월분 월세를 뺐다. 나는 분명히 3개월 전에 이사 갈 것을 당신에게 통보했다. 책상과 매트리스 비용 300유로는 납득한다. 하지만 9월분 월세는 납득할 수 없다. 세입자 보호법에 근거해서 당신에게 650유로를 돌려줄 것을 통보한다. 만약 당신이 10일 안에 문서로 회신하지 않을 시 어떤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드린다. 그때 발생하는 변호사비 등 제반 비용은 당신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사전에 숙지하시길 바란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독일에서 외국인으로 특히 유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학생들의 경우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는 경우가 많을 테니 말이다. 초반에는 언어의 문제도 크다. 어디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할지 정보를 얻기도 힘들고. 이번 일은 어이가 없어서 독일 사람들도 혀를 찰 케이스였다. 집주인의 편지에는 수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오전 11시부터 12시 사이에 예약을 한 후 오지 않으면 돈을 주지 않겠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조카의 친구는 금요일 오전 11시에 갔다. 편지를 쓴 지 두 주 만에 650유로를 돌려받았다. 억울한 일을 당한 학생들이 포기하지 않고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서 유학 생활을 잘 마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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