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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없는 독일 치과 방문기

치아가 튼튼하다고 칭찬을 들었다

by 뮌헨의 마리


독일 치과의 스케일링은 인정사정없었다. 단정한 인상의 간호사 손끝이 얼마나 야무지던지. 이른 봄에 단단한 논밭을 사정없이 파헤치는 기분이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아이도 나도 충치는 없었다.


아이가 1년에 두 번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치과 진료 확인표



치아가 튼튼한 편이다. 태어나보니 안 계셔서 직접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아버지를 닮은 게 아닐까 싶다. 언니는 엄마를 닮아서 어려서부터 치아가 부실했으니까. 치아가 좋은 사람들의 특징은 치과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 통계를 내 본 건 아니고 나 자신을 관찰하니 그랬다. 우리 언니는 치과라면 벌벌 떨었는데. 신경 치료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모양이었다.


치과를 간 기억은 세 번이다. 20대 후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동경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간다고 했을 때. 지금의 남편이 치과 치료를 받고 오라는 게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지? 건강 검진도 아니고 치과를? 잘 몰라서, 하라는 대로 했다. 깊은 뜻이 있겠지 싶어서. 양쪽 어금니 총 다섯 개를 금으로 때웠다. 그 후로 오랫동안 치과에 안 갔다.


마흔에 출산을 했다. 한국에 귀국 후 치과에 들렀다.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출산을 하면 치아가 약해진다는 소리를 듣고 점검차 갔다. 아랫니 하나에 홈이 생긴 것도 메울 겸. 부산의 치과에서 무려 200만 원 치 땜질을 했다. 가격이 지나치게 많다 싶었지만 오랫동안 치과를 안 다닌 대가라 생각했다. 윗니 어금니 하나는 금으로 때웠다. 7만 원짜리 스케일링을 서비스로 받았다.


아이는 치과에는 가고, 매년 정기 건강 검진으로 때웠다. 도 남편도 치아가 좋으니 애는 당연히 괜찮겠지? 하면서. 치아는 유전이 팔 할 아닌가. 독일로 오기 전에 서울에서 스케일링을 받은 적이 있다. 언니가 다니는 치과였다. 치과 잘 만나는 것도 3대 복 중 하나겠다. 엄마 세대들은 점집과 미용실을 꼽는다고 었는데. 언니가 소개한 치과는 의사도 간호사도 친절했다. 착해 보이는 간호사가 해주는 스케일링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깜빡 졸기까지 했다. 믿거나 말거나.



치과 가는 길. 지하철 계단에 쌓인 낙엽들.



독일로 와서 잇몸이 조금 부었다. 치과에 가야지 하다가 해를 넘겼다. 고기도 그렇지만 병원도 가 본 사람이 잘 간다. 외국인들이 치과에서 바가지를 썼다는 사례를 듣고는 더욱 신중해졌다. 집 근처에 괜찮은 치과가 있다는 말은 율리아나 할머니께 들었다. 여름 지나 가볼까 했더니 60세 정도인 치과 의사가 정년퇴직을 한다고. 수 없이 시누이 바바라가 다닌다는 치과에 예약을 부탁했다. 아이도 1년에 두 번 치과에서 스탬프를 받아가야 했다.


치과에 가며 처음으로 걱정이 들었다. 스케일링을 안 한 지도 오래였다. 치석 때문에 잇몸이 부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독일 치과의 스케일링은 인정사정없었다. 단정한 인상의 간호사 손끝이 얼마나 야무지던지. 이른 봄 단단한 논밭을 사정없이 파헤치느낌이랄까. 간호사도 힘든지 두 번이나 참을 만하냐고 물었다. 아픈 게 문제인가. 무사히 끝나기만 바랐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아이도 나도 충치는 없었다.


치과는 티끌 하나 없었다. 스케일링을 마치고 진료대에서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는데 비로소 클래식 음악이 귀에 들어왔다. 긴장이 풀렸는지 밀려드는 안도감. 어려운 숙제를 해치운 심정이었다. 아이와 내게는 전동 칫솔 사용을 권했다. 거기다 나는 매일 치실 사용까지. 집에 와서 의사 선생님이 내 치아가 튼튼하다고 칭찬하셨다 하니 아이 왈, 엄마 아빠 이가 튼튼하니까 자기 이는 '할 수 없이' 튼튼할 거란다! 간호사가 이가 많이 시릴 거라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역시 난 치과 체질인 모양이다.



치과 가는 길. 호텔 이름도 문학적! <Otello>는 셰익스피어 작품 <Othello>를 원작으로 만든 오페라다..이름이 음악적이라고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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