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해보니 독일어가 부족함을 느꼈다. 공부의 소중함도 알게 됐다. 원 없이 글도 쓰고, 원하던 일도 하니 공부에 대한 의욕이 되살아났다. 비빔밥처럼 조화롭게 살기로 했다. 글도 쓰고, 일도 하고, 독일어도 배우면서.
다시 시작하는 독일어 수업 교재!
독일어 수업을 듣기로 했다. 이 나이에 이럴 줄은 나도 몰랐다. 독일어를 배우러 다시 어학 학교에 가다니! 30대에독일어를 배우고두 번째다. 작년 초 뮌헨에 왔을 때는 독일어가 배우기 싫었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하다. 작년은 1년 동안 글만 썼고, 올봄부터 지금까지 알바를 했다. 일을 해보니 독일어가 부족함을 느꼈다. 공부의 소중함도 알게 됐다. 원 없이 글도쓰고, 원하던 일도 시작하니 공부에 대한 의욕이 되살아났다. 비빔밥처럼 조화롭게 살기로 했다. 글도 쓰고, 일도 하고, 독일어도 배우면서.
내가 가는 어학 학교는 사설 학교다. 첫 알바를 할 때 괴테 플라츠에서 젠들링어 토어까지 지하철 한 구간을 걸어 다녔다.일을 마치면 젠들링어 토어 역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어학 학교는 바로 그 카페 옆. 시민교양 대학인 폭스 호흐 슐레(VHS)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수업 시간이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었다. 내가 원한 건 주 2회.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아이는? 오후 4시에 학교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먼저 집에 가도록 했다. 레벨 테스트를 보던 날 오후에 수업을 청강한 후 곧바로 등록했다.내가 번 돈으로 수업료를 내는 기분이 짜릿했다.
요즘도 사전 보는 사람이 있나? 그 시절엔 그랬다. 마르고 닳도록 보던 그때 그 사전!
강사의 이름은 막스. 수업 중 예문에 끼워본인을 소개하길 36세 미혼남. 와이프도 아이도 없단다. 유머가 있고 언어 감각이 좋았다. 수업 템포가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모든 수강생들이 막스 칭찬을 했다. 한 마디로 좋은 선생님이라는 거다. 수강 인원은 총 6명. 모두 여성들이다. 2년째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60세 가까운 스페인 아주머니도 만났다. 스페인에서는 물리 교사셨다고. 그 어려운 과목을! 갑자기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그 나이에 새 언어까지 배우시다니. 멋진 그녀의 이름은 마르 Mar. 바다란 뜻이란다. 내 아이가 어리다고 하니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나도 마흔에 둘째 딸을 낳았어!'그 딸이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다고.
중년의 중국 여자분도 있었다. 뮌헨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단다. 내가 중국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는 대놓고 실망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미안하기도 처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어려워서 기억을 못 한다.그래서 나도 웬만해서는 한국 이름을 안 쓴다. 일본과 이태리 출신두 사람은 자주 빠졌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타냐는 남북한을 구분 못해서 내가 북한에서 왔냐고 물었다. 외국에 살면 흔히 겪는 일이다. 선생님 막스가 나보다 더 당황하며 '마리는 한국에서 왔지', 하고 중재를 했다. 역시 뭘 좀 아시는 선생님이다. 다음 수업 때 타냐가 니콜라우스 초콜릿을 하나씩 돌렸다. 이 정도면 괜찮은 선생님과 멤버다.
1월부터 다닐 새 직장은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 반까지다.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쉬는 규칙적인 생활이시작된다. 규칙적인 게 체질에 맞나? 그게 아니라면 규칙이 없이는 한도 끝도 없이 게을러질 본성을 두려워하는 건지도. 내가 여러 분야의 잡기를 멀리하는 이유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그러니 나의 성실하고 착실해 보이는 외양은 알고 보면 각고의 노력의 산물이라고봐야겠다. 한 번뿐인 인생을 왜 그렇게 재미없이 사냐고? 한 번뿐이라서 그렇다. 두 번이면 이렇게 안 살지도 모르겠다. 내 멋대로 살다가 다음생을 기약하면 되니까. 그렇다고 이 생이 아쉽다는 말은 아니다.원하는 대로 살아도 봤는데 결론은 그래 봐야 별 거 없더라는 것. 성실함이 답이더라는것.그래서 다시 독일어를 시작한다면 말이 되려나.
어학학교 교실 밖 풍경과 주2회 아이를 위해 사놓는 스시. 가격은 6개에 3유로. 슈퍼에서 파는 스시 도시락보다 밥이 휠씬 맛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건 연어와 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