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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n 07. 2019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철학적인 아름다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철학적인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내 믿음'과 '그 책이 어떤 책이든 간에 그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인 새벽의 책 읽기.




요즘엔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다. 새벽에 하기에 가장 적당한 일이 까를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다. 당연하게도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게 글쓰기라면 겠지만 글쓰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키처럼 쓰기! 생각만 해도 멋지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글쓰기란 게 그렇잖은가. 책상에 앉기만 한다고 저절로 써진다면야. 글이 잘 안 될 때는 꼭두새벽부터 풀리지 않는 숙제나 과제를 떠안은 느낌? 글이 막히면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웠. 하루의 시작이 스트레스라면 좋을 리가 없다.


새벽에 하기엔 독일어 공부만큼 좋은 것도 없는그것도 저항이 있어 그만두었다. 이때의 저항이란 게으름. 절실하지 않아서겠다. 이런 건 해봐야 작심삼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아닌 것이다. 나와 싸우면 백전백패. 내 마음은 오셀로를 파멸로 이끈 이아고 수준의 계략가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싫은 일은 피하려 들겠지. 그런 경험이 한두 인가. 운동, 다이어트, 공부, , 인간관계.. 진다. 사이좋게 가는 게 최선이다. 어느 순간 습관이 되고 몸에 익어 다른 영역까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리슬쩍 넘볼 수 있게.


갱년기 불면증을 활용해 보는 것은 최근에 생각한 방법이다. 그동안 잠을 잘 자야 한다는 생각이 자다가 더 자주 깨는 부작용 .  전략은 이렇다.  10시쯤 잔다. 새벽에 깼는데 4시 전이면 계속 자고 4시 이후면 일어나기. 글쓰기를 염두에  때는 머리가 복잡하니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읽기는 당근 효과가 있었다. 책이야 펴 들기만 하면 되는 일이 뇌가 부담을  느끼 모양이었. '책이나 읽을까?' 잠이 덜 깬 자신에게 당근 대신 책들이대는 사이 잠도 깨고 눈도 반짝 떠졌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몸도 마음도 가뿐했다.



절실한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독일에 와서 읽으려싸서 짊어지고 온 책이 오죽 많아야지. 그런데 글을 쓴답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또 무슨 아이러니인가. 책도 안 읽고 대체 뭘 쓰나. 그리하여 오월의 끝에 손에 든 책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철학적인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내 믿음'과 '그 책이 어떤 책이든 간에 그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과 '내가 반쯤은 예감하고 반쯤은 이해할 수 없는 진리와 아름다움의 비밀'과 '그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 내 사유의 막연하지만 변함없는 목표'인 새벽 읽기. 다음 문장들은 첫 번째 1내게  선물이었. 나의 놀라움은 비를 저렇게도 묘사할 수 있다니!


콩브레 정원의 마로니에 그늘에서 보낸 화창한 일요일 오후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생각할 때면, 그대들은 내 개인적인 삶의 보잘것없는 사건들을 정성스럽게 비워 버리고 대신에 흐르는 물로 적셔진 고장의 낯선 모험과 열망으로 바꾸어 놓았던 그때의 삶을 여전히 환기하고 또 실제로 그 삶을 담고 있도다. 내가 독서를 계속해 나가고 한낮의 더위가 가시는 동안, 그대들은 조금씩 그 삶을 에워싸면서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서서히 연속적으로 변해 가는 그대들의 고요하고도 향기롭고 투명하게 울려 퍼지는 시간의 크리스털 안에 그 삶을 가두어 놓았도다.


뭔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것 같은 작은 소리가 나더니, 다음에는 위쪽 창문에서 모래 알갱이를 뿌리듯 가볍고 넓게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그 소리가 퍼지고 고르게 되고 리듬을 타고 액체가 되고 울리고 수를 셀 수 없는 보편적인 음악이 되었다. 비였다.(..) 빗방울은 마치 함께 날아다니는 철새처럼 하늘에서 빽빽이 줄을 지어 내려온다. 빗방울은 결코 다른 빗방울과 떨어지지 않으며, 빨리 내려올 때에도 결코 헤매지 않으며, 저마다 다기 위치를 고수하면서 뒤이어 오는 것을 이끌고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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