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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n 13. 2019

크리스탈이여 돌아오라

크리스탈과 함께 야외 수영장 그리고 저녁의 산책


"할로! 너희는 잘 지내지? 크리스탈이 집에 와 있어." 크리스탈 삼촌의 톡을 받고 아이도 나도 깜짝 놀랐다. 크리스탈이 집에 오다니!


크리스탈과 함께 야외 수영장에 갔다가 저녁에 크리스탈 삼촌집으로 가는 길.


월요일엔 글을 올리지 못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빴다. 독일 시간으로 자정까지도 글을  적은 드물었다. 밤 10시 넘어 글을 쓰다 잠이 들었는데 놀라 깬 것이 새벽 2시. 어쩔 수 없는 날도 있는 법이다. 시부모님이 재활 클리닉에서 무사히 집으로 귀가하신 것, 내가 독일에서 운전을 시작한 것도 글쓰기 감으로 부족하지 않은그날 최대변수는 아이의 반 친구였던 크리스탈이었다. 부모님 방문하고 뮌헨의 집으로 돌아온  월요일 오후 6시. 크리스탈의 삼촌 제프리로부터 왓츠앱을 받았다. 


"할로! 너희는 잘 지내지? 크리스탈이 집에 와 있어. 알리시아랑 통화하고 싶어 하니까 전화 바람." 


아이도 나도 놀랐다. 크리스탈이 집에  다니! 이때의 집이란 삼촌집을 말한다. 부모가 없는 크리스탈은 삼촌과 숙모 그리고 돌이 지난 사촌 동생과 살았다. 잘 다니던 삼촌 집에서 청소년 보호 센터로, 부활절이 지나자 갑자기 학교마저 떠나 얼마나 놀랐던가. 이런 일도 있구나! 학교에서는 모든 일을 저히 비밀에 부쳤다. 제프리의 폰은 계속 통화 중. 마음이 급해진 아이와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무더웠던 날씨는 당장이라도 소나기가 퍼부을 것처럼 먹구름이 지붕을 가렸다. 우반에서 내려 크리스탈 삼촌네로 걸어가는 동안 비가 억수같이 내렸. 천둥소리는 한 박자 늦게 따라왔다.


제프리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의 연락을 받고 온 독일 친구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우리는 함께 제프리 직접 요리한 그의 고향 아프리카 집밥을 먹었다. 요리를 하면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제프리의 이야기를 듣느라 생전 처음 먹어보아프리카 음식을  앞에 두고도 사진 한  찍지 못했다. 알리시아와 크리스탈은 크리스탈 방에서 놀고, 제프리의 아내는 돌이 지난 아기와 우리 옆에서 조용히 밥을 먹었다. 뮌헨에서 먹는 아프리카식 저녁밥은 허브향이 강하고 고기를 큼직하게 썬 치킨 수프와 토마토 소스로 볶은 밥에 달콤바나나 구이가 곁들인 음식이었다. 요리 전용 바나나가 있다는 것은 그날 알았다.


크리스탈 삼촌이 사는 동네(왼쪽). 크리스탈을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온 우리 동네(가운데) 그날의 밤하늘(오른쪽)


제프리를 우반역에서  2월이었다. 크리스마스 2주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간 아이로부터 크리스탈이 청소년 보호 센터로 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우연히 만난 나를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 크리스탈의 삼촌, 제프리. 우람한 체격, 검은 피부, 붉게 충혈된 눈동자. 그는 영문조차 몰랐다.  역시 아무 말도 못했다. 안부조차 물어보지 못했던 부활절 방학. 다시 핑스턴 방학을 맞고서 제프리와 크리스탈을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할 인가. 잘 지내냐는 말 외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나 고민하며.


발단은 어릴 때부터 크리스탈을 돌보아 주던 독일 아주머니였다. 크리스탈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그녀와 같이 보낸  그녀가 그녀의 절친인 우리 학교 어느 수녀님에게 편지를 보낸 것. 폭력 등이 암시된 그 편지로 제프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어떤 사유로 그녀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의 편지는 제프리가 쌓아왔던 주변의 신뢰와 자존감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다섯 달 동안 먹지도, 잠들지못해서 15킬로가 다. 크리스탈은 즉시 청소년 보호소로 격리되었고, 3개월 동안 크리스탈 수 없었다.


고향 아프리카를 떠나 런던에서 살던 제프리의 누이가 살도 안 된 아기를 두고 세상을 떠났을 때. 친아빠의 행방을 몰라 독일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니던 외삼촌인 그가 남겨진 아기의 보호자가 되었을 때. 그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몸이었다. 그날 함께 저녁을 먹었던 오랜 친구 사이인 독일 남자 두 명을 포함, 친구들과 이웃의 도움 없이는 아기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제야 작년 연말 크리스탈생일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많았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제프리가 말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자신과 크리스탈 존재할 수 있었다고.


크리스탈과 갔던 야외 수영장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햄버거집.


최근 제프리는 학교 측과 청소년 보호 센터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이겼다. 재판부는 학교와 청소년 보호 센터가 근거가 약한 제삼자의 편지 한 통으로 크리스탈을 그녀의 보호자이자 가족인 제프리로부터 격리할 사유가 없음을 인정했다. 청소년 보호 센터의 요청으로 재판부가 출석을 요구한 독일 아주머니는 끝내 오지 않았다. 제프리는 재판 전 자신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학교 측에 긴 편지를 보냈다. 자신의 피부색이, 흑인이라는 이유가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누구보다 상담이 필요한 건 독일 아주머니라고. 제프리와 크리스탈은 청소년 보호 센터 측의 권고로 상담 과정이수했다. 학교측은 7월 초에 제프리와의 만남을 수락했다.


다음날 오후 알바를 마치고 아이와 크리스탈을 데리고 우리 집 근처의 야외 수영장에 갔다. 무더웠던 전날에 비해 오후에도 날씨가 흐려서 기온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가끔씩 해가 나와 었다. 아이들은 춥지도 않은지 야외 수영장이 문을 닫는 저녁 7시까지 물에서 나오지 않았다. 저녁은 아이가 우겨서 동네 햄버거 집에 갔는데 양이 너무 많아  다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거의 남겼다. 집에 돌아와서 조금 놀다가 이자르 강을 따라 크리스탈 삼촌집으로 걸어갔다.


크리스탈은 청소년 보호 센터로부터 핑스턴 방학 동안 열흘 남짓 휴가를 얻었다. 삼촌 집에 주말마다 오간 건 2주 전부터라고 했다. 크리스탈은 침착하다고 할까 우울하다고 할까. 예전보다 무거운 분위기였다. 삼촌집으로 다시 오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더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삼촌이 자기와 놀아줄 시간이 전혀 없다고. 그렇다고 설마 안 온다는 말은 아니겠지? 뮌헨 같은 대도시에서 외국인으로서 사는 것, 4인 가족의 가장이 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언젠가는 크리스탈이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우선은 돌아오는 게 중요하다. 돌아오라, 크리스탈이여.


크리스탈의 삼촌집은 우리집에서 이자르강 건너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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