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Aug 20. 2019

냥이들과 함께 주말을

밀루와 모카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동물에게 애착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너무 좋아하면 괴로우니까.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동물에게 애착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편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너무 좋아하면 괴로우니까. 그중에서도 동물원을 싫어하는데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때가 다. 그때마다 힘들다. 동물원의 동물들을 바라보는 . 태어난 곳에서 살지 못하는 서글픔. 무리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애잔함. 거기일평생 우리에 갇혀 사는 고통까지 포함해서.


부산의 마지막 일정은  친구 Y의 집이었다. 고양이 두 마리가 있는 . 하얀 냥이 밀루와 잿빛 냥이 모카. 밀루를 만난 건 6년 전의 일이다. 그때는 우리 아이도 냥이철부지 애기였다. 까칠하고 곁을 내주지 않던 아기 고양이는 나이를 먹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밀가루처럼 하얘서 밀루라고 불리던 . 1년 뒤 입양한 모카는 밀루와는 달랐다. 잘 생기고 품위가 있고 무엇보다 강아지만큼 사람을 따랐다. 우리 아이가 반한 건 당연지사. 이틀 동안 '모카' 이름줄기차게 불렀다.


Y가 삼촌 댁에 있는 우리를 데리러 온 건 토요일 오전이었다. 범어사 아래 보리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차로 범어사 드라이브 길을 한 바퀴 돌았다. 범어사 계곡을 따라 내가 좋아했던 암자 금강암에 오르기로 한 건 다음으미뤘다. 날씨도 더웠고, Y도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다. 왜 아니겠는가. 딸을 키우며 쉬지 않고 일, 지금도 하고 있는 내 친구. 배움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으로 뚜벅이처럼 살아온 내 친구. 옛날에는 주말마다 산에 더니 지금은 주말마다 쉬는 내 친구. 중학교 때부터  내 친구.



저녁에 오기로 한 친구 S를 기다리며 Y 집에서 오후를 보냈다. 집 청소도 다 못하고 나를 데리러 왔던 Y가 미안하다며 다시 청소기를 손에 들었다. 그게 왜 미안할 일인가. 한여름에 애까지 달고 손님으로 온 내가 미안해야지. 나는 친구의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빈 생수병과 플라스틱과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해서 아파트 밖으로 내다 버렸다. 친구 딸과 우리 아이의 도움을 받아서. 주부가 제일 하기 싫은 게 그런 일 아닌가. 저녁에 S가 오고 같이 마라탕을 먹고 시장길을 걸어 천천히 돌아오던 밤. 친구의 아파트 단지 화단찬란하게 피어있던 장미꽃 등불. 하늘엔 둥근 보름달.


그날은 동창인 우리 셋과 아이까지 4명이 거실에 옹기종기 누워 에어컨을 켜놓고 잤다. 새벽에 냥이들이 몇 번이나 거실로 들락거리는 에 Y가 안방으로 둘을 몰아넣은 후 문을 닫았다. 밤새 엄마가 그리운지 야옹야옹 울다가 문을 긁다가 두 마리가 난리도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Y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커피도 마셨다. Y의 밥과 차와 커피는 언제나 맛있다. 그러고 보니 Y의 밥상을 받아먹은 지 오래다. 내년에도 우리는 만날 것이다. 그때는 내가 밥을 사야지.


아이는 이모가 차려주는 아침 밥상 앞에서 누가 묻지도 않았건만 이 말만 계속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음식이 입에 안 맞았던 모양이었다. 멸치볶음은 달고, 토마토 볶음은 낯설었겠지. 속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멘트에 이모들과 Y의 딸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세 번 정도 수저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던 아이가 미안한 내색도 없이 냥이들을 향해 내뺐다. 친구야, 니 탓이 아닌 거 알지? 쟤는 원래 아침 많이 안 먹어. 빵이 밥인 나라에서 왔잖아. 그리고 들려오는 아이의 간절한 목소리. '모카야, 모카야.. 이리 와서 누나랑 놀자!'



매거진의 이전글 부산에서 나를 놀라게 한 몇 가지 일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