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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ug 22. 2019

적멸보궁 가는 길

강원도 법흥사


월요일 아침 스님 한 분을 뵈러 강원도로 갔다. 법흥사 가는 길의 계곡과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비탈의 소나무 길이 스님이 걸으시는 길처럼 맑고도 정갈했다.


월요일 아침 스님 한 분러 강원도로 갔다. 내가 아는 단정하고 품격 있는 비구 스님 세 분 중 분이시다. 스님은 톡을 사용하지 않으셔서 1년에 한두 번 메일로만 소식을 전하는데 이번에는 한국에 나오기 전에 미리 연락을 못 드렸다. 부산에서 메일을 드리 서울의 언니 편으로 소식을 주셨다. 아침에 일어나길래 아이는 집에 두고 갔고, 언니도 요가 수업이 있어 함께 못  것을 스님이 많이 아쉬워하셨다. 언니와 아이가 같이 온다고 생각하시고 감자를 밥통 가득 쪄놓고 나오셨다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스님을 안 지도 만 12년. 언니가 이태리에 살 때 송광사에서 출가하신 외국인 스님 두 분을 만난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스님과 그분들은 같은 은사 스님을 모시고 출가한 사형사제 간이었다. 외국인 스님들은 핀란드 스님과 이태리 스님. 추운 겨울 언니와 이태리 피자 집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두 분은 빛바랜 한국 승복을 입고 계셨다. 출가 후 몇 년 지나 한국을 떠나신 터라 한국의 스님들과도 연락이 끊긴  오래. 어느 해 언니가 두 분을 모시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연락이 닿았던 분, 외국에서 출가 수행자로 살기 힘들 거라 모두가 환속을 장담했을 때도 끝까지 두 분을 믿고 기다린 분도 강원도 스님이셨다.



강원도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차가 막히는데도 원주까지 버스로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점심은 법흥사 가는 길에 나물밥을 먹었는데 반찬이 참하게 딸려 나왔다. 두부와 고기와 김치도  쟁반에 담겨 나왔는데 스님을 따라 나도 두부만 먹었다. 법흥사 적멸보궁은 스님이 꼭 보고 가는 게 겠다 하셔서 따라간 곳이었.  일대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하루에 세 곳까지도 돌아볼  있다 하셨는데 시간이 없어서 법흥사만 보았다. 스님 말씀대로 법흥사 가는 길의 계곡과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비탈의 소나무 길이 스님이 걸으시는 길처럼 맑고도 정갈했다.


법흥사는 무릉법흥길을 따라 계곡 끝 깊은 산속에 있는 담장도 없는 절이었다. 절 안 장독대 주변에 핀 꽃들이 예뻤다. 내가 좋아하는 다알리아도 보았다. 절 뒤편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넓었고, 길가엔 차곡차곡 쌓은 돌탑과 수려한 소나무들이 눈길과 발길을 동시에 끌고 당겼. 적당한 햇볕과 서늘한 그늘, 바람까지 안성맞춤으로 불어  풍경들을 사진에도 담고 마음에도 담느라 자꾸 발걸음을 멈췄다. 스님 뒤를 따르며 이마에는 송송 땀방울도 맺혔다.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적멸보궁 길을 오를 때 나이 드신 스님의 뒷모습도 보았다. 십여 년 전 처음 뵈었을 때 지금의 내 나이셨는데 벌써 예순을 훌쩍 넘기시다니.



전라도의 작은 암자를 떠나 스님이 강원도로 오신 건 내가 독일로 오기 직전 겨울이었다. 이듬 해 봄에 독일에서 메일로 안부를 전하고서야 그 소식을 들었다. 단아하고 아름답던 암자와 따르던 신도들을 두고 스님은 왜 깊은 산중으로 떠나셨을까. 예순 중반은 스님이든 누구든 병원과 가까워질 연세인데. 번거로운 게 싫어서, 주지 일이 맞지 않아서,라고 스님은 말씀하셨. 암자라는 표시도 없이, 수행자라는 내색도 없이 아침저녁으로 텃밭을 일구시며 집 밖 출입도 삼가시고 고요히 살아가실 스님의 남아있는 날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오후 여섯 시 기차를 타기 전에 스님이 계신 곳도 잠시 렀다. 포실포실 삶은 감자를 내주셨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직접 재배하셔서 냉장고에 넣어 둔 옥수수와 방울토마토는 아이스박스에 담아주셨다. 집 뒤편 경사진 밭에서  익은 가지와 아삭이 고추도 따주셔 점점 무거워진 보따리를 둔내역 역사까지 들어주셨다. 일상을 밭농사 짓듯 살아내는 이 얼마나 어려운 인가를 오십이 되고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잘은 모르면서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지만 수행이 별 가.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망상으로 세월 축내지 않고 자기 길을 는 것. 누가 보든 상관 고 남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매일매일 성실하고 순간 묵묵히. 그날 스님과 적막한 적멸보궁 길을 걷듯. 한 발 또 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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