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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ug 28. 2019

그 밤, 정동길을 걸었다

서울 산책


한밤의 덕수궁 돌담길. 발길을 멈추게 하던 기타 소리. 그 밤 돌담길 앞에서 '뷰티풀'을 소리쳐 부르던 가수의 목소리. 그랬다. 그의 노래처럼 아름다운 날들이 있었다.




지난 주말에는 오전에 틈틈이 친정 엄마와 언니 집 정리를 도왔다. 엄마가 혼자 옮기시기 힘든 책장이나 큰 물건의 배치를 원하시는 대로 바꿔드렸다. 옛날에는 이런 일쯤은 혼자서도 척척 해내시던 분이었는데. 작년 연말 부산에서 서울 언니 집 근처이사하실 때 짐을 거의 정리하신 라 크게 할 일은 없었다. 몇 년 후면 여든이 되시는 엄마의 집이 단출해지자 엄마의 삶의 무게가 줄어든 것만 같아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언니네 집에서는 서랍오래된 옷을 정리해 주었다. 물건이란 게 본인이 버리기 얼마나 어렵나. 여자들에게는 특히 옷이 그렇다.


토요일 오후에는 언니와 선릉에 사는 친구 Y의 집으로 가서 친구가 끓여주는 맛있는 잔치 국수를 먹었다. 최근 회사 일과 집안 일로 어려움을 겪던 J언니도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에어 프라이기로 친구가 쪄 준 노란 고구마와 국수로 배가 불러서 저녁을 먹은 후에는 친구의 아파트 단지 안을 몇 바퀴나 걸었다. 오기로 했던 E가 없는 빈자리도 컸다. 오후의 햇살 아래 친구의 낮은 아파트에서 내다 보이던 푸른 나뭇가지와 파란 하늘과 담장 너머 절집의 단아하 법당 밤공기 속에 고요하고도 평온. 거실과 부엌이 분리되고 정돈된 친구의 아파트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일요일 오전에는 언니 집의 구석구석까지 대청소를 했다. 소파 등 가구 뒤쪽과 책들 위에 쌓인 먼지까지 싹싹 털어내자 옷가지를 정리한 후라 방들이 더 말쑥해졌다. 엄마의 이사와 함께 언니네도 지난 연말 이곳으로 이사를 다. 같은 골목에 엄마와 언니가 이웃해서 산다는 사실만큼 안심되는 일도 없다. 책과 식물을 좋아하는 우리 언니의 성정이 잘 드러나는 소박한 공간이 내 마음에도 었다. 예전에 언니가 인도에서 돌아와 이태리로 떠나기 직전 살던 곳도 그랬다. 이태리 사람인 형부와 부산대학교 옆 주택가 2층에서 3년을 살았는데 둘이 사는 집에 군더더기란 없었다. 미니멀 라이프. 햇살 좋은 옥상을 녹색으로 가득 채웠던 허브와 식물들도 생각난.


한가롭던 일요일 저녁에는 른 저녁을 먹고 광화문 네큐브에서 언니와 다큐멘터리 영화라도 볼 생각이었다. 언니와 내가 찜했던 영화는 <블루노트 레코드>. 결국 보지는 못했다. 볼 수도 있었지만 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는 게 맞겠다. , 멜빌의 바틀비여! 실은 아이와 부가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동안 둘은 뭘 하나. 영화는 언제라도 볼 수 있지만 아이와 이모부와 넷이 함께  기회는 많지 않다. 지나 보니 그렇더라는 말이다. 매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더라는 것. 그런 시간은 자주 오지 않으니까.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과거의 선택을 돌이켜주는 옷장이 있는 것아니라서. 그 밤 우리는 정동길을 걸었다.





시네큐브를 나와 광화문 방향으로 대로를 걸었다. 바람은 선선했고 인적은 드물었다. 밤하늘은 맑고 넓은 도보는 비 온 뒤처럼 청결했다. '서울이 깨끗하고 좋네!' 내가 말했다. '서울은 안전하고, 깨끗하고, 언제나 좋지!' 형부가 대답했다. 이태리 사람인 형부는 예전부터 한국을 좋아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 사람들의 정서를 좋아했다. 우리 언니가 한국을 사랑하지 않을 때조차도 한국을 사랑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두 사람은 서울에 정착했. 인도에서 만난 두 사람이 이태리를 돌아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언니가 한국에 살고 있어 얼마나 좋은지. 언니가 있는 곳이 언젠가 내가 돌아갈 집이라서? 이렇게 분리가 안 되니 우리 남편들이 포기하지. 우린 그런 쌍둥이 자매다.


세종대로 사거리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덕수 초등학교를 지나 덕수궁로를 걸었다. 덕수궁 야간 시간은 저녁 8. 아깝게도 입장 시간을 놓쳤다. 그러면 어떤가. 정동 사거리로 내려오는  길이 밤에도 얼마나 예뻤는데. 정동극장 쪽으로도 걸었다. 몇몇 카페는 그대로였고, 겨울에 들렀던 2층 카페는 문을 닫은 것 같았다. 우아하던 정동교회 빨간 벽돌과 하얀 창문. 눈길을 뗄 수 없던 한밤의 덕수궁 돌담길. 길을 멈추게 하 기타 소리. 그 밤 돌담길 앞에서 '뷰티풀'을 소리쳐 부르던 어느 가수의 목소리. 그랬다. 노래처럼 아름다운 었다.


소중한 날들을 가슴에

눈물이 마를 때까지

Beautiful

Beautiful


슬픔이 멎을 때까지

이별이 다할 때까지

Beautiful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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