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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ug 30. 2019

어쩌면 마지막일 서울의 브런치

금요일 아침을 맞다


카페는 아침 8시부터 문을 열었다. 괜히 억울한 마음. 지금까지 왜 몰랐지? 지금까지 뭐했지? 한 달 동안 부지런히 책도 읽고 글도 쓰려했건만.




금요일 아침 아홉 시. 한국에서 맞는 마지막 금요일 아침. 요가 수업을 하러 가는 언니를 따라 집을 나왔다. 언니가 그 시간에 집 앞 공원이 좋다고 하기에. 시원하고 조용하다. 밤의 그 시간도 좋았는데 아침도 좋다니. 출근하는 발길은 고 본격적으로 사람들로 북적거릴 때도 아니라서. 공원의 벤치에 앉아 글이라도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시간에 기계로 풀을 베시고 청소를 하시나. 소음을 피해언니 동네 북카페로 다.


카페는 아침 8시부터 문을 열었다. 괜히 억울한 마음. 지금까지 왜 몰랐지? 지금까지 뭐했지? 한 달 동안 부지런히 책도 읽고 글도 쓰려했건만. 아침 아홉 삼십 분의 넓고 넓은 북카페에는 공부 모임 중인 여자들. 잠시 앉았다 커피를 들고 떠난 남자들. 셔츠와 넥타이 차림의 젊은 남성. 혼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여성. 나도 거기 소리 없이 앉았다. 커피 기계 소리. 경쾌한 음악 소리. 마룻바닥에 끌리는 의자 소리. 바리스타들의 목소리. 서울의 아침 소리 사이로.





서울에서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부산도 다녀오고, 강원도도 다녀오고, 제주는 출발하려던 아침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포기했다. 그제는 그리운 샘과 서울에서 선유도를, 어제는 J언니와 여수도 다녀왔다. 10년도 전에 친구와 한번 가 본 적 있는 선유도. 그때는 허허벌판이었는데 샘이랑 간 선유도는 울창한 초록의 향연이었다. 가을날 낙엽 쌓인 선유도를 함께 볼 수 없음을 아쉬위 하는 샘을 위로하며 오후를 보냈다. 저녁에 샘이 사 주신 여의도의 보리굴비는 얼마나 맛있었던가. 양화 카페. 선유도를 잇는 무지개다리. 한강과 여의도의 풍경도 그림처럼 가슴에 남았다.


J언니와는 여수를 다녀왔다. 언니가 여수를 노래한 지도 오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언니와의 여수 여행에서 만난 건 출시를 앞두고 있다는 '여수 밤바다'라는 소주 포스터. 마시지는 않고 앞에 두고 바라만 보아도 기분 좋게 취할 것 같던. 여수 수산시장에서 전어회를 먹은 것. 갯장어 샤부샤부를 소개하시던 J언니의 선생님. 처음 마셔본 산사화. 이름도 색도 맛도 병까지 어찌나 곱던지! 마음을 정했다. 독일의 시부모님과 시누이에게는 저 산사화를 선물로 들고 가야지. 돌아오던 KTX-산천에서 만난 정겹던 지명들은 여수가 내게 안겨 선물. 곡성 남원 전주 익산 논산 계룡역.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이번 한 달간 가장 부지런히 한 건 책 읽기도 글 쓰기도 아닌 친구들. 서울에서는 가까운 친구들과 집중적으로 자주 만났다. 아이도 그랬다. 부산에서는 두루두루 넓게 만났다. 그래도 못 만난 친구도 있다. 오래 알던 친구들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들이 가장 경이로웠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특히 아이들에게 집중하던 친구들이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모습이. 모두에게 어찌나 신세를 많이 졌는지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고맙고 미안하다.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지 돌아보게 된다.


독일에 가서 어떤 알바를 할 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물었다. 글쓰기의 루틴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일.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일. 무엇보다 나이와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일. 몇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계속 고민해 보기로 했다. 아직 이틀이 남았다. 삼십 분. 이제 집으로 가야 한다. 오늘은 또 오늘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어젯밤 아이는 밤늦게까지 일기도 안 쓰고 본인의 창작 활동에 골몰하느라 바빴다. 아이가 쓰고 랩으로 부른 노래는 이랬다. 피곤하다며 결국 일기는 못 쓰고 그냥 잤다.


할머니 소화소화 소화기!

언니 보고보고 보고싶어!

엄마 사랑사랑 사랑해!

아빠 멋져멋져 멋쟁이!

이모야 고마고마 고마워!

이모부 요리요리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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