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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Sep 11. 2019

제인과 메리의 시대

제인 오스틴을 독일어로 읽다


제인과 메리. 제인 오스틴. 제인 에어. 메리 셸리. 프레디 머큐리의 메리. 왜 성공한 여자들은 모두 제인 아니면 메리인가.





제인과 메리. 제인 오스틴. 제인 에어. 메리 셸리. 프레디 머큐리의 메리. 왜 성공한 여자들은 모두 제인 아니면 메리인가. 자다가 새벽에 잠이 깼다. 물론 자다가는 수시로 깬다. 매 시간마다 깬 적도 있다. 시간을 체크했더니 그렇더라는 말이다. 오늘 새벽이 그랬다. 늦게 잔다고 애를 혼내고 책도 안 읽어주는 형벌을 내린 후 저녁 9시 반에 눈물 바람으로 재운 벌을 받는 건가? 요즘은 벌도 이렇게 재깍재깍 . 윤회는 어디 가고? 이번 생에 잘못하면 벌은 다음 생, 이런 시스템 아니었나.


아홉 시 반에 제인 오스틴을 읽다가 열한 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남편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골방에서 읽었다. 잠이 깨서 아침인가 하고 시계를 보니 새벽 시. 다시 깨니  두 시. 또 깨니 시. 하루에 커피를 세 잔이나 들이부은 탓이라고 치자. 누굴 탓하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니 무려 시. 그것도 남편 때문에. 이 분이 진짜! 이렇게 새벽에 나가시려면 본인이 말한 대로 어제 새벽 출장을 간 김에 호텔에서 편히 쉬고 다음날 돌아오셔야 맞는 거 아닌가? 본인의 체력도 세이브하와이프의 새벽잠도 허락하고. 얼른 자라고 등을 떠민다고 이 나이에 잠이 다시 오냐고!





어제는 아이와 오후에 후겐두벨 책방에 들렀다. 개학 첫날이라 급식도 방과후도 없었다. 빅투알리엔 마켓 비어 가르텐에서 그 유명한 돼지 넓적다리 오븐구이 '학센'을 둥근 빵 셈멜에 두툼하게 끼워주는 샌드위치를 샀다. 관광객 구경도 하며 한적하게 앉아 빵을 먹기로는 후겐두벨 맞은 편 성 피터 성당* 입구만한 곳도 없다. 아이와 빵을 나눠먹고 서점으로 올라갔다. 원래 계획은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소장하고 있는 <벚꽃 동산>과 같은 라인으 나머지 세 권을 사거나 주문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체호프는 어디 가고 우아한 장정에 혹해서 제인 오스틴 시리즈와 브론테 자매의 책들만 눈에 들어왔다. 70쪽에 불과한 체호프에 비해 무려 500쪽 분량의 책들인데 겁도 없이 말이다.


그래서 샀나? 샀다. 가격도 저렴하게 12유로였다. 그래서 읽었나? 읽었다. 작년부터 독일어로 된 문학책으로 독일어 완전 정복을  이래 성과는 미안하게도 전무후무하다. 변명을 하자면, 아가사 크리스티는 추리물을 안 좋아해서. 이게 말이나 되나. 정직하게 어려웠다고 털어놓자. 독일어샘 린다와 <이방인>을 읽은 것만 빼고. 오스틴의 첫 책으로는 <오만과 편견>을 골랐다. 총 60개 챕터라 하루에  챕터씩 읽어나가도 한 달이면 된다. 끝까지 가기만 면 말이다. 신기 건 엄두를 냈다는 것. 원래 처음에는 의욕이 앞서 손에 들긴 한다. <마담 보바리>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대표적. 한두 챕터만 읽고 내던진 책들이지만 말이다.





작심삼일부터 무사히 넘기기로 한다. 다행히 한국 가기 전에 아이에게 청소년 <오만과 편견>을 읽어준 게 생생하게 기억났다. 득인지 독인지는 지나 봐야 알겠다. 어제는 챕터 두 개를 가볍게 읽었다. 모르는 단어를 전부 찾으려는 욕심은 접고. 그러다가 책마저 접게 되는 불상사를 여러 번 겪어봤기에. 반복되는 명사나 동사를 그때그때 짚고 가는 정도로 만족한다. 일단 책 한 권을 완독 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에. 되풀이되는 실패보다는 작은 성취가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이런 것도 루틴이 된다면 '성공 루틴'이라 불러야 하나.


오늘 뮌헨의 하늘은 청명했다. 구월이 그렇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을 선사한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생으로 치자면 오십 이후. 원래 찬바람 부는 구월부터 쌀쌀한 십일월을 가장 좋아했다. 이십 때부터 좋아했으니 삼십 년을 한결 같이 사랑해 온 계절이다. 나이 오십까지 넘기고 만난 구월이니 물 만났다고 봐야 하나. 뭐든 믿는 대로 가는 법이다. 남이 웃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인가. 여기엔 그럴 사람도 없고. 그래서 쓸쓸한 건 또 무슨 변덕인가. 그만 책이나 보고 글이나 쓰자! 심각한 생각은 네게 어울리지 않는구나, 구월이여. 그립고 그립구나.  시월이여, 십일월이여.


뮌헨 시청사 맞은편 성 피터 성당이 있는 골목(위)과 뮌헨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성당 꼭대기 전망대(아래)


*성 피터 성당은 뮌헨 시청사 맞은편 T텔레콤/후겐두벨 건물과 도이치 은행 사이 골목에 있다. 성당을 끼고 왼쪽으로 꺽어지면 전당대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싸다. 1~3유로. 계단은 좁고 가파르고 끝이 없다. 엘리베이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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