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사는 직업

호텔 7

by 뮌헨의 마리


매일 오전 4시간 동안 발에 불이 나도록 치열하게 살고 죽는다. 최고의 몰입과 몰두의 시간이다. 이런 게 선이고 도고 명상 아니며 뭔가. 순간을 사는 직업이자 영원을 사는 직업.





다른 곳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하는 작은 호텔에서는 하루하루 순간을 위해 산다. 1층은 프런트와 레스토랑, 주방과 뒤뜰이 있다. 뒤뜰에는 흰 천막을 두 개 쳐놓고 주방 앞에 있는 쪽은 흡연 코너로 이용하고 있다. 주인 할머니가 골초시라 그렇다. 이른 아침부터 쉬지 않고 피우신다. 모닝커피를 마시면서도 조간신문을 보면서도 피우신다. 아마도 밤까지 피우실 것 같다. 나는 담배 연기 알레르기가 있는데 이상하게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다.


할머니에겐 호텔 운영을 맡고 있는 두 자녀가 있다. 서른 살 아들의 이름은 유리. 이름만 들어도 러시아적이다. 외모도 톨스토이 소설에 나오는 전형적인 러시아 남자다. 들은 바에 의하면 러시아 사람은 잘 웃지 않는다는데 그도 그렇다. 심지어 그의 와이프는 진짜 러시아 여자. 주인 할머니와는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니콜은 서른두 살. 아직 미혼인 듯하다. 중견의 검은색 개를 데리고 호텔로 출근한다. 그녀가 근무하는 날이면 이 충직한 개는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데스크 밑 주인의 발치에서 오전 내내 조용히 기다린다. 놀랍다. 안 됐다.





호텔의 조식 서비스 일은 어떻게 하루하루 완성되는가. 조식은 전날 묵은 손님이 몇 명인가가 관건이다. 요즘은 총 25개 방이 연일 예약 완료다. 인원수는 조금씩 다르다. 적은 날은 33명. 많은 날은 50명. 홀 테이블은 9개. 테이블이 서너 번 돌려면 접시도 컵도 커피잔도 포크나 나이프도 잘 접힌 냅킨까지 동시에 착착 맞아떨어져야 한다. 테이블 식기 수거, 새 테이블 세팅, 식기 세척기 돌리기, 마른행주로 닦기, 홀 쪽으로 나르기. 식기 보관함에 정리하기.


가장 중요한 건 오믈렛이나 계란 프라이를 담는 1인용 무쇠 팬이 제때 회수되는 일이다. 안 그러면 계란 조리 담당 미나의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이건 좋지 않은 신호다. 그녀의 독일어 상태도 불량해진다. 알아듣기 어렵다. 음료가 담긴 유리병. 오렌지, 망고, 사과, 포도 주스. 물과 우유, 커피 종류와 계란 조리 방법과 룸 넘버도 기억해야 한다. 숙박 인원과 실제로 조식을 먹으러 내려온 인원수를 대조 필수. 빵과 햄과 치즈 등 먹거리가 부족한지 아닌지, 커피를 더 내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호텔의 평일 조식 시간은 오전 7시에서 11시까지. 주말은 오전 8시부터다. 매일 오전 4시간 동안 발에 불이 나도록 치열하게 살고 죽는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다. 그 순간만 생각하고 그 순간에 집중한다. 최고의 몰입과 몰두의 시간이다. 이런 게 선이고 도고 명상 아니면 뭔가. 하루를 살면서도 진부하지만 노래 가사처럼 전부를 거는 것이다. 순간을 사는 직업이자 영원을 사는 직업.


20대 때는 공무원 생활을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행정직 서무 아니면 회계 아니면 둘 다. 시작도 끝도 없던 서류일. 감사와 보고와 월간 계획서는 왜 돌아서면 돌아오고 또 돌아오던지. 출근을 해도 출근이 아니고 퇴근을 해도 퇴근이 아니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이 일이 좋다. 매일 같은 일이어도 좋다. 그렇지 않은 일이 어디 있나. 어제 일을 고민하지 않고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아서 좋다. 오늘 일만 생각하니 더욱 좋다.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아서 더더욱 좋다. 비록 옥토버 페스트로 뮌헨의 호텔들이 미어터진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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