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엔 2시에 퇴근하기

호텔 10

by 뮌헨의 마리


시월! 나는 시월을 사랑한다. 시월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시월이 너무 좋아 다음에 오는 십일월까지 사랑할 정도다.





이번 주는 오후 2시 퇴근이 목표다. 동료 미나가 주방과 홀의 뒷정리를 완벽하게 도와주고, 치즈와 햄&살라미 쟁반까지 끝내고 룸 청소를 가기에 가능하다. 제일 손이 많이 가는 두 가지 쟁반을 안 해도 되니 손도 마음도 덜 바빴다. 과일, 야채, 훈제 연어, 전채 요리인 안티 파스티와 쿠헨 등 다섯 가지 쟁반만 준비하면 되니까. 그 정도는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 월요일은 2시 반. 오늘은 1시 반에 퇴근했다.


어제와 오늘 호텔 주인 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그렇게 좋으실까. 얼마나 흡족하시면 제는 처음으로 배고프면 먹고 마셔도 된다. 오늘은 빵 두 개를 들고 가도 될까요? 하니 더 들고 가라고 해서 네 개를 들고 왔다. 미니 빵이라 점심으로 두 개는 먹어야 요기가 된다. 미나가 나를 위해 햄을 따로 싸주었다. 빵에 꼭 끼워 먹으라고. 끼니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그녀의 신신당부까지 함께 들어있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그녀의 말은 맞다.


요즘은 일을 마치면 무조건 마리엔 플라츠의 후겐두벨 서점으로 온다. 호텔 앞에서 52번이나 62번 버스를 타고 빅투알리엔 마켓 앞에 내려서 시장을 가로지르거나 옆으로 돌아서 걷는다. 아이 학교와도 멀지 않으니 부담이 없다. 커피는 아침에 호텔에서 마시므로 카페 이탈리에는 가지 않는다. 오후에 또 커피를 마시면 괜히 잠만 설칠 수 있어서다. 후겐두벨 2층에는 안락한 1인용 소파가 있다. 등까지 기대고 깊숙이 앉으면 얼마나 편안한지! 오늘은 한 사람이 오래 앉아 있어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윈피스처럼 경쾌한 개량 던들의 뒷모습도 예쁘다!



빅투알리엔 마켓만 걸어봐도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바이에른 전통 의상인 던들을 남녀노소 없이 입고 다니는 모습도 진풍경이다. 뮌헨 사람들은 이 기간에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뮌헨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친구도 옥토버 페스트가 끝나고 뮌헨이 좀 조용해지면 만나자고 할 정도였으니까. 나도 작년에 한번 가보고 다시 갈 생각이 없어졌다. 그 북새통을 떠올리니 피곤하다. 손님이 오면 가겠지. 동경에 살 때 도쿄 디즈니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미나가 아직 못 봤다고 하니 동료애를 발휘할 의사는 있다.


날마다 보면서도 빅투알리엔 마켓에서 마리엔 광장으로 오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하늘을 좋아한다. 언제 봐도 시원하고 푸르다. 오늘따라 날씨가 맑아 더욱 가을다웠다. 시월! 나는 시월을 사랑한다. 시월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시월이 너무 좋아 다음에 오는 십일월까지 사랑할 정도다. 어둡고 쓸쓸하고 추운 독일의 십일월은 등불을 가까이할 때다. 책 읽는 즐거움이 없다면 이듬해 삼월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겨울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책이여, 영원하라!


5일만 지나면 옥토버 페스트도 끝이 나겠지. 다시 뮌헨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오겠지. 호텔 알바야 계속되겠지만 이런 난리통을 한번 지나왔으니 그때는 알바일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 독일어로 읽는 <오만과 편견>도 다시 시작하겠지. 해는 점점 늦게 뜨고 일찍 지겠지. 어둑어둑한 아침 출근길엔 낙엽도 쌓이겠지. 위태롭게 매달린 붉은 나뭇잎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겠지. 운명처럼 시월의 마지막 날도 찾아오겠지. 당신 생각도 한번쯤 하겠지. 그리고 십일월로 건너가겠지. 뒤돌아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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