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주인 할머니께 혼나다

호텔 9

by 뮌헨의 마리


오 가을! 하늘은 맑았고 푸르렀고, 투명했다. 다시 시작이다. 언제나 새날이다. 나에겐 다시 오늘치의 하루가 있을 뿐.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지.




토요일에 호텔 주인 할머니께 혼나고 일요일은 웃으며 출근했다. 그럼 어쩌나. 일하면서 그러기가 예사지. 그보다는 일요일 아침에 미나가 한 말에 더 걱정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니 뒷목이 당기고 아프다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드는 생각을 딱 하나. 제발, 아프면 안 돼! 다행히 다음날 아침에 물으니 괜찮아졌단다. 퇴근해서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일찍 잤더니 훨씬 낫다고. 역시 예사 체력이 아니다. 다행이었다. 나를 위해서나, 호텔을 위해서나, 누구보다 미나 자신을 위해서.


미나 역시 마찬가지로 내 걱정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혹시 안 나오고 그만둔다 할까 봐. 지난 2년 동안 숱한 파트너가 그녀를 스쳐갔을 것이다. 단 하루 만에 그만둔 사람도 있고, 몇 주 혹은 몇 달 만에 떠나간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일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미나가 내게 한 말도 나랑 더 오래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전날 다른 구직 자리를 훑어보았던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미안해, 걱정했구나. 나도 너랑 계속 일하고 싶어.


그러던 미나도 월요일이 되자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았다. 두어 차례 폭풍처럼 객실 손님들이 다녀간 뒤 나보고 어지럽지 않냐고 물었다. 자기가 그런 모양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자기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 말이 유리 파편처럼 날아와 내 가슴에 박혔다. 그래, 맞아. 어떻게 사람이 기계처럼 쉬지도 않고 일할 수 있겠니. 룸 청소를 하러 올라가서 점심을 먹고 있으면 호텔 주인 아들이 뛰어올라와 빨리 청소를 끝내야 한단다. 나까지 한숨이 났다.





일요일엔 날씨가 좋았다. 아침에 출근할 땐 그토록 긴 출근길이 일을 마치고 남편과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땐 왜 그리 좋기만 하던지. 오 가을! 하늘은 맑았고 푸르렀고, 투명했다. 햇살은 따사롭고, 발치에 쓸리는 낙엽도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한두 그루의 나무는 벌써 가을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한 없이 붉고 노랗던 작년 가을도 생각났다. 올해도 그런 단풍을 볼 수 있기를. 울긋불긋했던 마음도 파릇파릇한 잔디 위로 낙엽처럼 가볍게 내려앉기를. 다시 시작이다. 언제나 새날이다. 나에겐 다시 오늘치의 하루가 있을 뿐.


어제는 글을 쓰고 또 써도 글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두 문단을 쓰고 고치고 졸다가 피곤해서 잤다. 그런 날도 있다. 인정해야지. 내가 무슨 대단한 작가라고 시작만 한다고 글이 나온단 말인가.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 어젯밤의 고난에 찬 문장을 말끔히 지우고 다시 시작했다. 안 되는 글을 붙들고 있어 봐야 시간만 아깝다. 결국 안 된다. 깨끗하게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는 편이 빠르다. 일도 그럴까. 그렇지 않다. 이런 것도 다 배우는 과정이다. 야단도 안 맞고 칭찬만 들으려고? 그런 게 오만이자 자만이다. 겸손하게 다시 시작해야지.


호텔 주인 할머니께 혼난 글을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걱정하는 마음, 위로하는 마음, 격려하는 마음들이 한가득 정겨운 밥상처럼 차려져 있는 걸 고맙게 받았다. 고맙고 쑥스러워 아직 일일이 답글을 쓰지 못했다. 이 글로 감사의 말을 대신할까 한다. 일 자체는 좋아하지만 현실은 이상이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구질구질하지만 내가 겪는 일상을 그대로 쓸 뿐이다. 너무 걱정 마시기를. 조금 징징거린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한 마디로 이런 마음이다. 나도 내 편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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