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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Oct 24. 2019

뮌헨의 전통시장 아우어 둘트를 소개합니다

시장에서 프라이팬을 선물 받다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매일 배운다. 그럼에도 기운 나는 일도 있다. 축축한 날들 중 어느 하루 반짝 해가 드는 것처럼. 아우어 둘트 전통 시장에서 뜻밖의 프라이팬을 선물 받는 일처럼.




뮌헨에는 여러 종류의 시장이 있다. 마리엔 플라츠 옆에 있는 빅투알리엔 마켓은 뮌헨의 대표적인 상설 야외 시장이다. 매일 열고 일요일만 쉰다. 벼룩시장도 곳곳에서 열린다. 9월 말부터 10월 첫째 주까지 옥토버 페스트가 열리는 곳은 테레지엔 비제 Teresienwiese 인데, 여기서는 봄에 초대형 벼룩시장이 열린다. 특이한 건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딱 하루만 연다는 것. 규모가 엄청나서 하루에 다 돌아보기도 어렵다. 독일에서 벼룩시장은 일상이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은 어린이 용품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주말마다 열린다.


그중에는 뮌헨의 연례 전통 시장도 있다. 이름은 아우어 둘트 Auer Dult.1년에 세 번 열리는 야외 시장이다. 봄(5월), 여름(7월), 가을(10월)에 오픈하는데 올가을엔 10.17(토)부터 10.27(일)까지 열린다. 장소는 내가 일하는 호텔 바로 옆 광장 마리아 힐프 플라츠 Mariahilfplatz. 우리 재래시장처럼 없는 게 없다. 볼수록 정겹다. 뮌헨의 할머니들께 사랑받는 시장 같다. 재래시장과 벼룩시장을 적당히 합한 느낌. 주말은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로 넘쳤다. 광장 한가운데의 마리아힐프 성당을 중심으로 왼쪽은 먹거리와 놀이기구가 있고, 오른쪽은 시장이다. 옷부터 책, 주방용품, 엔틱까지 골고루 구경할 수 있다.





어제는 이틀을 쉬고 출근을 하니 주말에 보았던 손님들이 계속 보여서 오래 계시네, 신기하다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분들이 모두 아우어 둘트 시장 상인들이었다. 아침에는 한 여자 손님이 내게 휴무였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까 안 그래도 쉬는 날인가 생각했단다. 고마운 마음. 다른 몇 명의 손님들도 친절했다. 그분들을 모두 아우어 둘트에서 볼 줄이야! 사실은 내 동료 미나 덕분이었다. 그녀는 그들 모두가 몇 호실에 묵고 있는지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게 프로다. 수요일엔 일을 마치고 미나와 아우어 둘트에 갔다.


내게 휴무냐고 물었던 여자분은 성당 바로 앞에서 정원의 장식품을 팔았다. 도자기로 만든 꽃과 새들. 가게가 크고 손님이 많아서 인사를 하지는 못했다. 또 다른 여자분은 부엌 용품을 팔았다. 다른 남자 한 분은 허브와 향신료 종류를 팔고, 또 한 사람의 남자분은 프라이팬을 팔았다. 우리가 인사를 드리자 반갑게 맞아주신 분은 프라이팬 가게 사장님. 미나가 예전에 함께 온 여자분의 안부를 물었다. 떠날 때는 작은 프라이팬 하나씩을 선물로 받았다. 가격이 무려 30유로인 프라이팬을! 계란 프라이용으로 내가 꼭 사려던 팬이기도 했다. 다음에 커피라도 한 잔 건네고 싶은 마음.





이처럼 좋은 손님이 있는가 하면 진상 손님을 만날 때도 있다. 지난주에는 어떤 할머니 손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첫날 내가 삶은 계란이 너무 완숙이라고 화를 내시던 분. 다시 삶아드리겠다는 내 제안을 거절하고 미나를 부르셨다. 다음날도 할머니를 위해 끓는 물에서 딱 4~5분만 반숙으로 삶았다고   믿는다며 내 동료 미나를 다시 부르시던 분.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나. 떠나시던 날 아침 택시를 불러놓고 기사분을 30분이나 밖에서 기다리게 하더니 그냥 돌려보낼 때도 마음이 안 좋았다.


생각해 보면 나를 지치게 한 건 할머니의 영향도 컸다. 이틀 동안 그런 소리를 들어보라. 아침부터 기운이 빠진다. 그것도 계란 하나 때문에. 가슴에 박힌 말의 가시를 빼는데 이틀이나 걸렸다. 주말에는 뮌헨에 오신 새어머니가 한국 식당에서 대접한 한국 음식에 반응이 별로셨다. 김치전과 잡채와 불고기. 다행인 건 매운 걸 못 드셨는데 매운 돼지불고기 비빔밥은 맛있다 하셨다.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매일 배운다. 그럼에도 기운 나는 일도 있다. 축축한 날들 중 어느 하루 반짝 해가 는 것처럼. 아우어 둘트 전통 시장에서 뜻밖의 프라이팬을 선물 받는 일처럼. 시장의 그릇 가게에서 초록의 접시 위에 담긴 초록밤과 노란 단풍잎을 보는 것처럼. 시장의 그림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하그림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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