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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pr 24. 2019

부활절의 점심 초대

인내심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처럼 성격 급하고, 참을성 없고, 앞뒤 안 재고 행동에 옮기는 돈키호테 형도 드문데. 내게 이 말을 한 사람은 바바라였다.


무인 판매 꽃밭에서 직접 딴 튤립은 시어머니께 드리는 선물


활절 일요일에는 시어머니로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다. 작년과 동일한 장소였다. 슈탄베르크 호수 반대쪽 레스토랑 겸 호텔. 나는 매번 뉴 선택에 실패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아이도 나도 만족. 아이는 얇은 소고기 돈가스 비엔나 슈니츨을 혼자 다 먹어 치워서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세 사람을 깜짝 놀래켰다. 엄마와 파파만 안 놀랬다. 뭐 그런 걸 가지고.


작년과 다른 점은 작년 부활절보름 정도 빨랐다는 것. 작년에는 날씨가 쌀쌀했 올해는 더웠. 작년에는 실내에서 올해는 야외에서 식사를 했. 그것도 햇볕이 따가워서 파라솔 아래에서. 식사가 끝나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다가 아버지 시어머니 젊을 때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셨다. 심지어 우리 테이블에서 음식을 서비스하던 중년 독일 여자분에게 자랑하셨다. 그 모습이 보기 나쁘지 않았다. 구십이 넘은 분의 아내 사랑이라니!


식사 후에 시어머니 댁으로 가는 길에 들판의 무인 판매 꽃밭에서 튤립 열 송이를 직접 따서 시어머니께 선물했다. 열 송이에 4유로였다. 튤립을 자르는 가위까지 얌전히 놓여있었다. 수선화는 열 송이에 3유로. 시즌이 다 지나서인지 수선화 구경은 못했다. 슈퍼에서 파는 튤립과 거의 같은 가격인데도 신선함은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들꽃을 한 다발 안고 가는 기분이었다.


샐러드, 슈파겔과 햄(위) 비엔나 슈니츨, 오븐 구이 모듬 생선(아래)


시어머니 정원 야외 식탁에서 다시 카푸치노를 마셨다. 남편은 먼저 뮌헨으로 갔다. 나와 바바라는 정원의 벤치에서 어머니의 이야기었다. 아이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할아버지 혼자 심심하시겠다. 내가 독일 동화 보여달라고 해볼까?' 아버지와 아이가 거실로 이동. 그날 어머니는 주로 집 얘기를 하셨다. 5월에 당신이 고관절 수술로 집을 비우실 동안 집에서 생길 일들 기타 등등 말이다.


시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당신의 노후 플랜까지 들려주셨다. 내가 시어머니를 좋아하는 이다. 뮌헨의 럭셔리 양로원에 들어가실 거라고. 친한 친구가 3년 전에 들어가 계시단다. 양로원 용은 아버지의 사후 연금으로 충당하고 집은 팔아서 양쪽 총 5명의 자녀에게 나누어 주시기로 공증까지 받으셨단다. 독일의 부모님들은 재산 상속 문제도 미리 정리해 놓으시는 모양이다. 그래도 분쟁과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말해 무엇하랴.


뮌헨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바라가 말했다. '왜 우리 엄마 목소리는 그렇게 크지?' (내겐 바바라의 목소리가 너무 작은데.) '그리고 말끝마다 왜 그렇게 흥분해?' (그것도 나에게는 문제가 아님.) '아, 피곤해 죽는 줄 알았어. 근데 넌 어쩜 그렇게 인내심이 많니?' (내 엄마가 아니라서 그런가?) 결론은 다들 자기 엄마와는 힘든 게 있구나. 그리고 바바라의 마지막 말이 내게로 날아와 박혔다. 인내심이 많다는 그 말 말이다.


젊은 날의 시어머니 사진과 아이에게 주신 부활절 바구니


살다 살다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나처럼 조급하고, 성격 급하고, 앞뒤 안 재고 행동에 옮기는 돈키호테 형도 드문데. 물론 평생에 한번 들어보고 싶은 말이기는 했다. 물론 나도 안다. 이 말을 내 남편과 아이가 들었다면 당장 다음과 같은 반응이 나왔을 거라는 것. 이런 소리에 화를 내면 내가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도.


'한번 살아보시라!'

'겪어보면 아니다!'

'남한테만 그렇다!'


억울할 것도 없다. 내가 지은 대로 받는 거라서. 나도 이런 내가 연구 거리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나. 도대체 언제부터? 언제까지? 내가 구제받을 방법은 정녕 없단 말인가? 그게 궁금해서 글을 쓴다. 안다. 옛날부터 그랬다. 가족보다 남들에게 친절했다. 특히 엄마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그런습이 되어 버려서인지 잘 고쳐지지 않는다. 내게 남은 과제 중 하나다.


레스토랑 길 건너편 슈탄베르크 호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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