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어 둘트 시즌 손님들과 내년에 다시 만날 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 걸 누가 알겠나. 좋게 만났다가도 곧 헤어지거나, 무덤덤하게 만났다가 친구 사이가 되기도 한다. 짧든 길든 인연은 소중할 뿐. 시작도 끝도 우리에게 달린 일이 아니므로.
비누도 예술이 되는 곳, 아우어 둘트 Auer Dult 전통시장(아래 왼쪽)
호텔에서 일하다 보면 잊을 수 없는 손님들이 있다. 두 유형이 있는데 아주 친절하거나 그 반대다. 일요일은 뮌헨의 전통시장 아우어 둘트의 마지막 날이었다. 일주일 넘게 우리 호텔에 묵었던 손님들도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 동안 다 떠났다. 그동안 내 동료 미나와 나를 긴장시켰던 손님 세 사람과도 무난하게 마무리한 주말이었다. 언제나 화난 표정의 60대 할아버지. 아침 인사도 안 하시고 인사에 대꾸도 없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불만이라도 있으시나?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던 분이었다. 아침마다 홍차를 드셨는데 일요일엔 티폿에 뜨거운 물을 받아 차를 테이블로 가져다 드렸다. 보통은 셀프서비스다. 고맙다고 하셨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남몰래 내쉬던 미나와 나의 안도의 한숨.
50대 남자 손님과도 잘 풀리지 않았다. 이 손님이 오는 시간은 늘 가장 바쁜 시간대. 모든 커피 포트가 테이블로 나간 이후였다. 여분의 커피를 내리고, 여분의 포트를 준비하느라 4~5분을 기다리야 했다. 그렇다고 화를 내는 손님은 처음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인내심이 강한 편인데. 이런 손님과는 불운이 겹친다. 긴장하면 더 그렇다. 이분이 앉는 자리만 후추통이 비는 건 무슨 법칙인가. 목이 호리병처럼 생긴 후추통 안이 안 보이는 게 함정이었다. 일요일엔작정하고 커피를 두 번이나 추가로 내린 후 대기했다. 커피가 남으면 주인 할머니께 폭풍 잔소리를 듣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전전날 모든 후추병과 소금통과 설탕통도 꽉꽉 채웠다. 같은 손님의 불평을 두 번 듣는 건 괴롭고 미안한일이다.그럴수록 밝게 인사를 건네야 한다.잘 끝났다.
40대 남자 손님과도 그랬다. 원래 표정이 그런 사람이 있다. 무뚝뚝한 사람의 표본 같은 타입. 그런 손님이 앉는 자리에는 꼭 문제가 생긴다. 깐깐한 감사 팀장에게 걸린 것처럼 말이다. 그손님이 앉은 테이블의 포크가 그랬다. 끝이 미세하게 휘어졌다.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딱딱한 표정으로 포크를 일자로 세워 나를 부르던 손님. 새 포크 두 개! 그건 주방에서나 쓰는 포크인데 언제 그 테이블까지 옮겨갔나. 일요일도 그랬다. 음식을 평소만큼 준비해 놓아도 남을 때가 있고, 두 번 이상 새로 보충해야 할 날이 있다. 일요일엔 그 손님이 가장 늦게 왔다. 햄과 살라미도 거의 떨어질타이밍인데. 바로 보충해 오겠다 하자평소보다 누그러진 톤으로 자기 접시에만 조금 담아오면된단다. 접시에 넉넉하게 담아 테이블로 서빙했더니 덤으로 팁이 2유로. 주방으로 돌아와서 미나와 하이 파이브를했다.
일요일도 월요일도 팁을 받았다. 호텔 조식 서비스란 팁을 거의 받지 않는다. 나 역시 호텔에서 아침을 먹으며 팁을 준비해 간 적이 없다. 마지막 날 룸에만 잔돈을 남겨둔다. 우리 호텔도 그정도였다. 혼자 오는 여자 손님이있었다. 리스트에서 확인한 이름은 사비나. 늘 아침 일찍 오는 손님이었다. 내 휴무일을 기억해준 손님. 아침에 미리 내려놓는 블랙커피 말고, 레스토랑 바의 기계로 뽑는 카푸치노와 더블 에스프레소를 매일 아침 부탁했다. 한가할 때는 이런 부탁받는 게 즐겁다. 놀면 뭐하나. 지루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게 낫다.일요일엔 이 손님이 나와 미나에게 5유로씩 팁을 주고 떠났다. '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sweet girls!' 따뜻한포옹과 함께. 마지막 인사까지 정답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손님은 아버지와 딸이었다. 중년의 아버지와 대학 새내기 딸인듯했다. 옆 테이블을 치운 후 빈 접시 가득한 쟁반을 들고 뷔페 음식을 고르는 손님 뒤에서 기다릴 때였다. 딸이 조용히 자기 아빠를 불렀다. '파파!' 아버지가 나를 보고 웃으며 길을 내주었다. '이 호텔 조식 괜찮지?' 미소 띤 얼굴로 딸을 바라보며묻던 아버지. 야채 쟁반의 뚜껑을 열며 '파프리카도 하나.' 딸 접시에 올려주던 아버지.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그 이름, '파파'. 그 말이 메아리처럼 며칠 동안 내 귀에 울렸다. 어제도 두 사람은 테이블이 비워지는 한가한 시간에 레스토랑으로 내려왔다. 두 사람을 위해 야채와 과일 쟁반을 다시 채웠다. 아버지가 먼저 체크 아웃을 위해 리셉션으로 가고 나자 딸이 나와 미나에게 각각 팁을 주었다. 5유로 지폐의 소중함.
아우어 둘트 시즌 손님들과 내년에 다시 만날 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걸 누가 알겠나. 좋게 만났다가도 곧 헤어지거나, 무덤덤하게 만났다가 친구 사이가 되기도 한다. 짧든 길든 인연은 소중할뿐. 시작도 끝도 우리에게 달린 일이 아니므로. 이번 아우어 둘트 시장은 호텔 손님들이 대부분 시장 상인들이라 내 일처럼 관심이 갔다. 작년 세 번의 시즌을 포함, 올봄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다. 올가을에는 시장을 몇 번이나 꼼꼼하게 둘러보았다. 볼수록 재미있었다. 장사가 잘 되는 가게와 그렇지 않은 가게들도 한 눈에 보였다. 이번 시즌은 시작과 끝 양쪽 주말 모두 날씨가 좋아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오늘 아침 체크 아웃 때 어느 손님이 주인 할머니께 하신 말씀도 그랬다. 다행이었다. 내년에도 변함 없이 그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