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지난 일이다. 지나간 일은 전생이라 생각한다. 안개 자욱한 호수 앞에서나 생각나는. 안개비는 먼저 떠난 인생들의 미완성 서사시 아니면 소설 같은 것.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처럼.
주말인 전날만 해도 봄날이었다. 아니 가장 가을다운 날씨였다. 기온은 20도. 햇살은 반짝. 나시 원피스를 입은 사람까지 보았으니까. 사람들의 얼굴도 빛났다. 그렇게 가을을 보냈다. 밝은 모습으로 이별한 것만해도 어딘가, 마음을 달래며. 아쉬움은 아쉬움 대로, 그리움은 그리움 대로, 내버려 두고.
비 오는 시월의 마지막 월요일. 기온은 8도. 아이는 방학이었다. 오전에 파파랑 영화를 보고, 영화가 끝나면 고모랑 빅투알리엔 마켓 수프 가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 이후 내가 아이를 픽업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바바라 고모는 일요일 오후 감기에 걸리고. 비는 내리는데.아이는 파파랑 영화만 보고 집으로 왔다.
월요일엔 나도 호텔일을 일찍 끝냈다. 혼자 일했는데도 12시 반쯤 마쳤다. 그날은 객실 청소를 담당하는 베트남 출신 도흐가 쉬는 날이었다. 9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딱 하루를 쉬었다. 키도 작고 몸매도 아담한 사람이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지. 독일에서 아이를 키운 도흐는 9년을 우리 호텔에서 일했다. 저 근면 성실함이라니. 이런 사람은 무조건 존경하고본다.월요일은 미나가 도흐 대신 객실 청소를 했다.
방학 첫날 아이는 슈탄베르크의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이틀을 지내기로 했다. 월요일 오후 내가 일을 마치고 데려다주었다가, 화요일 오후 일을 마친 후에 데리러 가는 것. 비 오는 날 안개 낀 호수를 구경하는 일은 시어머니 댁을 방문하는 즐거움 중 하나다. 아이만 데려다 놓고 저녁을 사양하고 뮌헨으로 돌아왔다. '저녁 먹고 갈래? 일찍 가서 쉴래?' 시어머니께서 선택지를 주셔서 결정하기가 쉬웠다. 두 분이 아이와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시아버지의 상태는 나날이 좋아 보이셨다. 이제는 매주 방문하지 않아도 되겠다. 나는 새벽부터 일하느라, 아이는 매주 시험을 보느라, 둘 다 피곤하기 때문이다.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하루 자고 오라고 한 건 잘한 일 같았다. 어제도 시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내 보물이다.' 시어머니와 나와 아이를 한 명 한 명 돌아보시며. 그리고 고맙다 하셨다. 아이를 보내 주어서. 차로 역까지 데려다주시며 시어머니도 말씀하셨다. '고맙다, 얘야.'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감사하죠.' 그건 진심이었다.
나 역시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기억한다. 살면서 너무 많은 고통을 겪으신 분들이었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슬픔 같은 것 말이다. 먼저 간 사람은 우리 아버지였다. 그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난 존재들. 그들이 떠나고,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모래알처럼 흩어졌는지. 그건 공평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자주 할아버지를 꿈에서 뵈었다. 지금은 평안하시리라 믿는다. 그러셔야 한다. 이 모든 꿈 같은 일들이 지금은 다 지난 일이다. 지나간 일은 전생이라생각한다. 안개 자욱한 호수 앞에서나 생각나는. 안개비는 먼저 떠난 인생들의 미완성 서사시 아니면 소설같은 것.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처럼. 오늘도 기차를 타고 호숫가에 내렸다. 비 내리는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