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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Oct 31. 2019

내 영혼의 18번

시월의 마지막 날엔 노래를



계절이 바뀔 때. 한국이 그리울 때. 노래를 듣는다. 향수병엔 특효다. 몸이 으슬으슬할 때 먹는 라면처럼. 요즘 자주 마시는 믹스커피처럼.





8월 한 달을 아이와 한국에 다녀왔을 때 남편이 입에 달고 다닌 말이 '휴가'라는 단어다. 우리가 집에 없는 날들이 자신 휴가였다고. 그 말이 얼마나 에누리 없이 정직한 표현인지 이번에 알았다. 지난 일요일 서머타임이 끝났다. 슈탄베르크의 시어머니 댁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월요일. 슈탄베르크를 출발한 시각은 오후 5시 반. 평소라면 환할 때였다. 그날은? 글자 그대로 캄캄했다. 한국과의 시차는 다시 8시간이 되었다.


S반을 타고 슈탄베르크에서 뮌헨 중앙역으로 이동. 다시 U반으로 갈아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황금의 저녁 7시. 남편은 퇴근 전. 아이는 할머니 댁.  시간이 진정한  휴가가 맞더라는 것. 밀린 빨래를 개고, 남편과 아이의 양말과 바지를 기웠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 배는 고프지 않았다. 아이와 남편의 저녁 필요 없었다.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 그날은 집에  난방을 켜서 춥지 않았다. 그럼에도 낙엽처럼 쌓인 피로는 풀리지 않는다. 새벽에 일하는 게 몸에 익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비는 내리고, 내일모레면 시월끝인데. 이런저런 핑계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그 순간만은 천국이 따로 다. 이런 날도 필요하다.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 유튜브로  영혼의 18번을 들어야지. 언니가 톡으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노래를 소개해 주었다. 지난번 J언니와 서초동 거리 나가들었다고.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고. 몰랐던 노래였지만 언니가 말한 대로 '노래가 주는 위로'를 느낄  있었다. 맑고도 고왔다.


따뜻한 노래가 물속까지 따라온다. 찰랑거리고 일렁인다.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호사다. 걱정도 불안도 발 들일 데가 . 계절이 바뀔 때. 한국이 그리울 . 노래를 듣는다. 향수병엔 특효. 몸이 으슬으슬할 때 먹는 라면처럼. 요즘 자주 마시는 믹스커피처럼. 다섯 곡을 고른다. 이런 것도 글이 나. 다. 매일 글감을 고민하는  만만치가 않아서. 다섯 소절의 노래오늘의 글을 대체수만 있다면 내 취향이 바닥을 보이는  문제도 아니다. 각설하고.





*<존재의 이유 by 김종환>: 이유가 어딨나. 톱 오브 톱!!!


**<바람이 전하는 말 by 조용필>: 영원한 오빠. 이분 앞에서는 나이 불문, 국적 불문, 우리는 영원한 단발머리 소녀들. 마종기 시인의 시 <바람의 말>까지 챙기면 1+1.


***<홀로 된다는 것 by 김범수 버전>:김범수와 007 다니엘 크레이그의 공통점. 외모에 불만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럼에도 내게는 최고의 가수와 배우.  노래에 어울리는 배경 두 곳까지 누설하겠. 부산 지하철 1호선. 동래역에서 구서역까지 금정산을 마주 보며 가는 길. 지하철 문에 머리를 기댈 것을 권한다. 11월의 정동길도 강추. , 가로수 잎은 다 떨어진 후에.


****<가시나무 by 조승모>: 내겐 노래로 심은 나무 한 그루있다. 가시나무.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한다. 특히 유튜브에서 '라이브'로 들을 때. 살면 살수록, 나이가 수록, 그 가시 찔리는 날이 많다. 미노타우로스의 미로처럼 빠져나올 길도 방도 없다. 뜬금없이 인도 생각은 왜 나나. 시원한 돌바닥. 서늘한 공기. 어둑한 방. 아쉬람 근처에 살던 언니의 집. 소금과 고춧가루만 뿌려 아무렇게나 버무려주는데익으면 맛있던 깍두기. 촛불만 켜고 여럿이 둘러앉아 말없이 듣던 노래. 가사도 모르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서양의 여자 친구들. 아무 데나 떠다니던 인도의 향 냄새. 옷에도 머리에도 가리지 않고 스며들던 향신료 냄새.


*****<1994년 어느 늦은 밤 by 자우림 버전>:1994년. 일본의 소도시 다카마쓰에 1년을 살았다. 브라질에서 기술 연수를 온 일본인 이민 3세. 소년처럼 선한 낯빛과 순한 눈빛을 가진 후카시를 만나다. 고국에 두고 온 여자 친구가 있다고. 세상에, 한 눈 한번 팔지 않더라. 그게 이 노래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글쎄, 아무려나 1994년 어느 늦은 밤이라기에..






1. <단순한 열정>의 아니 에르노도 생각난다. 그녀의 열정은 깊고, 책은 다. 상류층과의 결혼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던 여자. 그녀를 뜨겁게 만든 건 의무로 듣던 클래식 말고 빛처럼 가슴으로 뛰어들던 대중 음악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2. 구독자 여러분들의 18번이 궁금해지는 시월의 마지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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